이해와 오해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랑과 신앙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큰 두 거짓말. 사랑이라는 단어와 신앙이라는 단어는 묵음으로 발음되어야 옳다. 허사(虛辭)로 통용되어야 맞다. 기의를 완전하고도 정밀하게 소외시키고 있는 이 기표들.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전혀 연관 없음. 사랑이라는 해묵은 단어는, 일찍이 그리스도 이후, 이천 년 전에 유명무실해졌다. 신앙이라는 오래도록 포르말린에 절여놓은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바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폭풍 속 나무들의 헤드뱅잉을 보듯, 바람을 막아주는 창문을 닫아놓은 채 사람들은 창밖을 음미하듯, 구경할 수 있는 거리가 확보되었을 때에만, 그리고 바람막이 같은 유리벽이 존재할 때에만 사랑과 신앙이 아름답다는 설파가 통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은 간격을 두고 벽을 쌓고, 참호 속에서 눈만 내밀고서 사랑과 신앙을 품어 안으려고 한다.
도덕과 헌신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큰 두 함정. 도덕과 헌신에 대한 인간의 강박은, 이미 덫이고, 우리는 이미 수렵꾼에게 총을 몇 방씩 맞고 피 철철 흘리며 도주 중인, 곧 잡히게 될 노루 한 마리와 같다. 그래 봤자 눈 덮힌 대지에 흘린 선연한 핏방울 때문에, 수렵꾼의 입장에서는 도주라기보단, 친절한 길 안내에 가깝다.
그럼에도...
더 이상 잡을 것이 없을 때에 우리는 인류가 만든 새빨간 거짓말과 지겨운 함정에도 기꺼이 투항한다. 오해마저도 고맙고, 거짓말마저 달콤하며, 함정마저도 즐거운 나의 집과 같이 칭송되는 지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해나 사랑, 신앙이나 도덕, 헌신 같은 것들은 눈물겹게 인간적이다.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에 되레 숭고하다.
<마음사전>에서 읽은 글이다. 요사이는 '인간적'이라는 말을 접하면 가슴이 울컥해진다. 한때는 인간적이란 걸 벗어나서 초월적 존재로의 비상만이 내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이 아직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인간적'이라는 것을 이젠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고 존경한다. '인간적'의 시작은이브와 아담이었다. 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 이브, 이브의 말에 주저없이 따랐던 아담, 이브와 아담은 바로 '인간적'이라고 부르는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 원죄(?)를 숙명의 유전자로 이어받은 우리들,실락원에 대한 한없는 사모와 그리움 때문에 우리는 오해마저도 고맙고, 거짓말마저 달콤하며, 함정마저도 즐거운 것이리라. 인간이 아름다운 건 바로 그러함 때문이 아니겠는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