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Fur

샌. 2008. 1. 27. 08:03


< Synopsis >

잘 나가는 패션잡지 사진사인 남편 '앨런'의 조수이자 헌신적인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디앤'은 평온하지만 왠지 갑갑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윗층에 기이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신비로운 남자 '라이오넬'이사를 오고 그에게 아찔한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게 된 '디앤'은 그를 만나기 위해 이웃들의 사진을 찍고 싶다는 핑계로 윗층을 찾게 된다. 차츰 '라이오넬'과 그의 기이한 친구들과도 가까워진 '디앤'은 한없이 다정하고 독특하며 예술적인 '라이오넬'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라이오넬' 역시 자신을 특별한 한 남자이자 인간으로 대하는 '디앤'을 열혼으로부터 사랑하게 되지만 그는 선천적인 특이함으로 인해 호흡곤란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디앤'은 마침내 그녀를 구속해왔던 상류 사회와 남편에게 이별을 고하고 '라이오넬'과 함께 할 결심을 한다. 그러나 '라이오넬'은 죽음을 예감하고, '디앤'과의 마지막 여행을 몰래 계획하며 그녀에게 건넬 마지막 선물을준비하는데...

< Cast >

디앤 아버스(Nicole Kidman)

어릴 때부터 난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어요. 인형 병원, 시체 검시소, 정신병원, 쓰레기장, 여인숙, 어디든지요. 하지만 남편의 조수가 됐죠. 하지만 라이오넬, 이제 내 사진을 찍을래요. 그리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사랑해요.

라이오넬(Robert Downey Jr)

디앤, 이 늦은 밤에 왜 온 거죠? 혹시 날 유혹하러 왔나요? 예전에 난 서커스에서 인기가 좋았었죠. 지금은 특별한 친구들과 내 삶을 살고 있지만. 내 병은 다모증이예요. 전염되지는 않죠. 하지만 조금씩 숨을 못 쉬게 되면서 죽어가고 있어요. 바다에서 수영을 해보는 게 꿈이었어요. 함께 가줄래요?

< You & I >

당신은 니콜 키드먼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나 역시 당신 때문에 그녀의 눈빛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눈빛을 타고난 배우들은 연기를 하지 않아도 연기가 된다는데 니콜이 그런 배우인 것 같아요. 이유도 원인도 모른 채 찾아온 사랑, 불가항력적인 사랑의 힘, 인간 내면에 잠재된 그런 에너지가 무섭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네요. 사랑은 불안과 갈등을 동반하고, 또 잔인한 측면도 있고,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감미로움과 행복. 라이오넬이 준 마지막 선물, 풍선 기억나시죠?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예요. 당신은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어요. 사랑이 늘 안타깝게 마무리 된다고. 아름다운 사랑이란 흘려야 할 눈물에 비례하는지도 몰라요. 그게 사랑의 역설인가요?



< Love Report >

사랑은 하나의 점이다. 선이나 면처럼 ·이어져 존재하지 않고, 찰나 속에서만 존재한다. 우리가 타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 순간, 사랑은 휘발되고 없다. 그런 고백을 듣는 그 순간, 그 말을 해주는 사람의 깊고 수줍은 눈빛을 바라보다 보면, 그사이 눈 몇 번 깜짝이다 보면, 사랑한다는 실체는 아득한 신화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사랑은 다만 강력한 자장을 내뿜는 찰나일 뿐이다.


사랑의 시작을 여는 필수조건에는 ‘실수’가 있다. 그 실수를 우리는 ‘운명’이라고도 말하고, ‘필연’이라고도 말하지만,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실수일 뿐이다. 실수의 첫 발이 사랑을 점화시킨다. 그 실수는 이후, 가장 특별한 것, 가장 현명한 것, 가장 필연적인 것으로 미화된다. 미화하는 힘 자체가 사랑의 힘인 셈이다.


사랑에 있어서 예의는 사랑의 장애물이 되거나 심지어 모독이 되기도 한다. 사랑은 결례의 와중에서만 완성된다. 의복이 하나의 예(禮)가 되어 버린 우리의 풍습에서, 옷을 벗는 것이 거의 부끄럽지 않고 살이 닿는 것이 행복할 때가 사랑이라면, 결례의 속살 속에서 사랑은 반드시 진실을 드러낸다. 결례는 버겁고 피곤한 것이지만, 그 중압감이 황홀할 때가 사랑에 빠진 때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매일 걷던 길도 생경하게 여기며 신선하게 느낀다. 그 생경함으로 짐짓 경건해지기조차 하는 것이다. 그 길에서 서성이던 무수한 자기 자신을 추억하며, 무미건조했던 예전의 자기 자신까지 생경하게 바라본다.


갓 사랑에 빠진 사람은 (남 얘기 듣는 걸 즐기지 않던 사람도) 흔히 “응? 응?” 하며 되묻고, (자세히, 완벽하게, 속속들이 이해하려고) 질문을 첨가하게 된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도) 당신이 담배를 집어 들고 두리번거리면 성냥을 갖다주러 벌떡 일어난다. 언제나 대기조처럼 부르면 달려가고 반기게 되는 것도 갓 사랑에 빠진 사람에겐 강령에 속한다. 또한, 매일매일, 오늘은 당신이 유독 예뻐 보이는 (멋있어 보이는) 날이기 때문에, 천장에 매달린 모빌을 바라보는 갓난아기처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안녕?” 하고 만날 때는 환한 웃음과 함께 강인해지며, “안녕!” 하고 헤어질 때는 슬픈 눈물로 한심하게 나약해진다. 비록 그들의 사랑이, 표면에 행복을 가장한 피폐의 구도를 지녔을지라도, 갖가지 잡념의 잔가지들을 뚝뚝 분질러 내버리며, 굵고 튼튼한 한 가지만을 손에 쥐려고 척추를 곧추세운다. 그리곤 모든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생각을 하며, 그 단순한 생각을 이내 실행에 옮긴다. 그러한 단순한 생각과 실행에 서로서로 더할 나위 없는 팀워크를 보이며, 그 팀워크 자체를 지상 최대의 목적으로 삼게 된다.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은 언제나 서로의 생각과 행동이 신비하게 보이며, 또한 노련하게 보이며, 또한 담백하게 보이며, 또한 짙디짙게 여겨진다. 끈질기게 만나면서도, 만나는 방식은 정해져 있어서, 우리는 같이 해보지 않은 게 너무 많아, 라고 아쉬워하게 된다. 그리곤 서로가 당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지금껏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을 의심하지 않고 숭고하게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그 연애의 와중에 너를 사랑한다는 상황은 여전하지만, 너를 사랑하는 주체였던 나 자신은 전혀 딴 곳으로 휘발돼 가버리는 것을 때로 느끼게 되는데, 그때가 바로 사랑에 ‘빠진’ 상태가 사랑을 ‘하는’ 상태로 전이되는 때다. 그때에는 비로소 당신이 보고 싶지만,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나 꼭 봐야겠다는 긴박함 같은 것보다는, 그저 오래도록 앓아온 폐병환자가 가슴 한 녘에 손바닥을 대고 콜록거리듯, 마음속에 흐르는 수맥에 손바닥을 대고 뿌듯해한다. 그때는 보고 싶지만 만나지 않아도 일상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다. 그때에 두 연인은 ‘신뢰’라는 말을 주고받게 된다. 상대를 신뢰하기도 하거니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마음 가장 안쪽에 깊숙하고 힘 있게 받아들여 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조금 옮겨왔을 때에 두 연인은 서로에 대하여 둘 간의 관계에 대하여 ‘기도’ 비슷한 것을 하게 된다. 스스로 원래 있던 자리에서 잘 살기를, 원래 있던 자리와 사랑에 빠졌던 그 지점 사이의 어디쯤에서 서로를 지켜보며 서성이기를 기도하게 된다. 그때의 서성임은 배회가 아닌, 피터팬의 어깨 위에 팔랑대는 팅커벨의 날갯짓과 같다. 그리곤 서로에게, 가장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창문이라도 되어, 당신의 방 벽에 붙어 있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주홍글씨 내지는 노예 문신 같은 게 자기 몸 어딘가에 낙인처럼 찍혀 있단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한다. 그 느낌에 대하여 쓸쓸하지만, 용감하게 수용하게 되며, 그러한 사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고달픔이나 안타까움보다는 명쾌함과 안락함 쪽으로 생각을 기울인다. 그렇게 고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 이상의 우왕좌왕은 없다. 이별의 순간까지도.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는 자신이 할 일에 방해받지 않기 위하여 연락을 두절할 ‘용기’가 생긱기 시작한다. 그즈음에는 싸움도 빈번하게 일어나며, 여간한 자극으로는 상대의 연민과 위안과 달콤한 한 마디를 얻어내기 어렵게 되어, 엄살을 떨기도 하고 우울을 가장하기도 한다. 할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푸념하기도 하며, 실컷 잠을 자고 싶다고 토로하기도 하며, 어딘가에서 한참 동안 숨어 있다 오고 싶다고도 하고, 어지러이 흐트러진 마음을 정돈하고 청소하고 싶다는 말을 비극적인 어투로 (그러나 의기소침한 마음으로) 내뱉기도 한다. 이럴 때는 상대가 달려와 위로해주더라도 마음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쪼르륵 달려와주는 당신이 재미있게 여겨질 뿐이다. 지금 당신이 내 옆에 있는데, 나는 왜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거지, 따위의 허무하디허무한 말들을 난사하며, 조금씩 서로의 마음에 찰과상을 입히기 시작한다. 고통에 대해 무장해제를 하고 있는 서로를 향해서.


물처럼 흘러온 이 욕망의 에너지는 부분적인 충족으로 조금씩 해갈되기도 하고, 탐욕에 가까웠던 그리움 따위는 아득한 추억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이때부터 사랑하는 대상은, 쓸쓸한 외연과 허기로 충만한 내포를 지닌, 사랑을 은유하는 ‘오브제’로 탈바꿈한다. 동질성의 발견으로 친화력을 발휘하며 한때 희희낙락하며 노닐던 자리에, 이질성의 발견으로 피로를 증폭시키는 남루한 현실이 도래한다. 여기까지가 ‘사랑’이며, 여기까지의 긴 (혹은 짧은) 여정 속에서, 누군가를 이 사이클 전부를 회전하며, 누군가는 공회전하며, 또 누군가는 요약적으로 건너뛰며 지나간다. 그러나 시작과 끝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욕망을 정신적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 즉 숭고한 어떤 논리에 아전인수하려는 노력 같은 것이, 때로 종교에 귀의하는 수도사처럼 정갈한 사랑의 행로를 가게 하기도 하지만, 그 행로도 무상한 시간 앞에서는, 책갈피 속 네잎클로버거나 포르말린에 담가둔 심장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나 사랑은 찰나 속에서만 존재하며, 그 찰나의 짜릿한 합일 이후는 길고 긴 이별을 변주하는 몸짓에 불과하다. 너무도 길고 긴 이별이지만, 그 과정이 인내할 만한 것은 (어쩌면 달콤하기까지 한 것은), 정든 사람의 ‘익숙한 손’과 ‘익숙한 체취’라는 향정신성 감각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죽음처럼 밀려드는 피곤을 감내하지 않으면, 사랑의 묘약은 사랑의 이 되며, 독이 번지는 영혼은 지옥을 온몸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아주 귀하게, 사랑의 행로를 숭고하게 받아들여 고행을 각오하여, 고통에 따른 가장 알맞은 보상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고결함과 순도를 얻고, 예전의 속도와는 전혀 다른 느림으로, 예전의 불균형과는 전혀 다른 균형으로, 천천히 천천히 성소(聖所)로 입소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 from '마음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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