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샌. 2008. 2. 5. 10:21

세상에는 보통사람이 흉내내기 어려운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를 쓴 리 호이나키다. 녹색평론사에서 최근에 나온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다시 새 빛을 보았고, 그리고 현재의 무기력한 내 모습이 그 빛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서 부끄러웠다.


리 호이나키는 1928년에 미국에서 나서 학교교육을 마치고 1951년에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간다. 9년 동안 빈민촌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푸에르토리코로 갔고, 거기서 이반 일리치를 만나 평생의 벗이 되었다. 그 뒤 칠레와 멕시코에서 생태적 삶에 대한 연구 활동을 했다. 1967년에 미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과 미국사회에 만연한 불의와 부도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가족과 함께 베네수엘라로 망명을 했다. 거기서 여러 해를 지난 다음에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교육을 표방하는 생거먼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나 7년 후 그는 정년보장 교수직을 팽개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로 들어가서 농부가 되었고, 거기서 화폐중심 사회의 틀에서 얼마나 벗어나 살 수 있는지를 실험하였다. 뒤에는 대학 식당의 청소원으로 일하며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하며 좋은 삶에 대한 가능성을 스스로 실천하였다. 2002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리 호이나키의 일생은 인간답고 품위 있는 삶에 대한 사색과 체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빈곤과 전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제도와 기술의 노예가 되고 있다. 어떤 면에서 현대인은 역사상 가장 비참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는 무지와 야만의 시대다. 호이나키가 볼 때 이런 시스템에 무기력하게 순응하는 것은 체제의 공범이며 반인간적인 경제제일주의에 협조하는 것이다. 그는 진실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그리고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며 사는 방법은 현재의 경제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것, 즉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존재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폭력의 체제에서 떠나고 피 묻은 돈을 만지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변화시키고 간소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이제껏 대부분의 인류가 살아왔던 방식,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자립적 삶이다. 호이나키는 인류의 오랜 윤리적이며 종교적인 전통으로 회귀하는 것에서 구원을 찾는다. 자기희생 정신, 타자에의 환대 등이 회복되어야 할 중요한 가치가 된다. 자기 성찰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하나의 목적을 가진 뜻있는 이야기로 파악하고, 물질주의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전제조건이다.


호이나키의 삶은 보통 사람이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했지만, 그러함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상징이 되고 있다. 특히 그가 이반 일리치를 만나러 멕시코로 갈 때, 일부러 비행기 타기를 거부하고 버스 여행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그리고 말년에 대학 식당의 청소원으로 고용되어 일하면서 우리가 천시하는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따스한 인간적 교류에 대한 묘사 또한 감동적이다. 보통 사람이 가기 어려운 길을 그는 용기 있게 걸어갔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사회와 내 삶을 다시 근본부터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은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이다. 인간의 품위를 따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지금은 소중한 인간적 가치들이 패퇴를 강요당하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박한 행복’을 쫓아가며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 너무나 불쌍하다는 것이다. 이 살벌한 세상이 아이들의 감수성과 가슴에 남기는 상처를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고 울분이 터지기도 한다. 좋은 세상, 좋은 삶에 대한 동경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은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한심하도록 무기력한 내 삶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불쌍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에게 한 가지 남은 소망이 있다면 호이나키와 닮은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를 따라 바보가 되어보는 것이 내 남은 생의 꿈이다. 만약 그 길을 갈 수 있다면 이 책에 실린 호이나키의 삶은 나에게 앞으로 더없는 용기와 희망이 될 것이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0) 2008.02.14
마지막 선물  (0) 2008.02.13
Fur  (0) 2008.01.27
마음사전  (3) 2008.01.26
빼기의 진보  (2) 2007.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