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샌. 2008. 5. 9. 15:11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 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가지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젊은 시절에 만났던 니체는 나에게 인간은 초극되어져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짜라투스트라의 천둥 같은 외침은 내 폐부를 찌르며 가슴 깊숙히 박혔다. 초극에의 길이 자기 부정과 고통과 용기를 필요로 하기에 내 젊음을 더욱 자극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내 인생의 화두 역시 거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담을 넘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아직도 자신이 만든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신세지만 '초극'이라든가 '넘어섬'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은 설렌다. 많은 사람들은 담 안의 세상에 안주하길 원한다. 담 밖으로 나가 낯선 환경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담을 넘는다는 일이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는 내 힘만으로 어떤 담이라도 뛰어넘을 줄 알았다. 담은 내 길을 막은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성격, 내 삶의 작은 틀 조차 깨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안다. 담을 넘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문태준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허공에 혹은 담장에 맞닥뜨린 가지의 엉킨 두 마음을 읽어낸다. 사람에게도 그렇듯이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감행의 신명이 공존할 것이다. 다만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데에는 혼연일체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그것을 범박하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랑의 배후로써 우리는 금단과 망설임과 삶의 궁기(窮氣)를 넘어선다. 사랑 아니라면 어떻게 한낱 가지에 불과한 우리가 이 세상의 허공을, 허공의 단단한 담을, 허공의 낙차 큰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