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샌. 2008. 4. 30. 13:52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을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날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벌써 4 월의 마지막 날이다. 내 탁상 달력의 메모란에는 장호원 감곡면의복숭아 과수원 가는 길이 그려져 있다.그렇게 올 봄에는 복사꽃 만발한 복숭아밭에 가고 싶었다. 가서 복숭아꽃 요염한 불길에 데이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덧 복사꽃도 지고 찬란했던 봄날은 가고 있다. 복사꽃 아래 누워 이 시를 읽으려 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