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다거나 성실하다는 것이 늘 칭찬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열심은 이웃과 생명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미로 밭을 매던 옛날에는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당연했고 긍정적인 보상이 따랐다. 그러나 전기톱을 든 사람이 무조건 열심히 나무를 벤다면 온 산을 헐벗게 할 뿐이다. 현대에 들어 개인이나 사회적 열정이 위험한 이유다. 우스갯소리로 '멍부'란 말이 있다.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을 빗대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은 주변의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피곤하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게으른 것이 본인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훨씬 낫다.
어떤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이 악에 가깝다면 성실하게 사는 것보다는 반항해야 옳은 일이다. 침묵하는 다수는 본인이 믿든 안 믿든 그 체제에 동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살아라, 아름답게 살아라 하는 당부는 냉철한 자기 성찰이 있는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멍부'들만 만들어낼 뿐이다.
K 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으로 극우, 개인적으로는 가부장 의식으로 뭉친 영감들은 사실 더 새롭게 해롭진 않아. 그들은 너무 추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없거든. 오히려 '저런 놈들 때문에라도 세상이 확 엎어져야 해'하는 생각이 들게 하지. 정말 해로운 사람들은 아름다워. 아름다움을 풍기면서 '그런다고 세상은 변하진 않아'하는 사람들이지. 그들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고 부드럽고 점잖은 사람들이고 월드비전이나 나눔문화 같은 데 기부도 하는 사람들이고 여행을가도 보성 녹차밭이나 담양 소쇄원으로 가는 사람들이지."
머리 좋고 영리한 사람들은 우아하고 아름답게 살 줄 안다. 그들은 현실에 잘 적응하고 체제가 주는 단맛을 즐긴다. 그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 체제의 충직한 전도사가 된다. 그런 점에서 품위 있고 아름다운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더 위험한지 모른다. 그들은 반면교사의 역할도 하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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