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밖에 수직으로 서 있는 시멘트 축대의 갈라진 틈에서 제비꽃 한 송이가 꽃을 피웠다. 틈이래야 폭이 실처럼 가는데 그 안으로 씨가 들어간 것도 신기하거니와 속에 무슨 흙이 있는지 싹이 트고 꽃을 피운 것이 희한하기만 하다. 빗물조차도 그 틈으로는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꽃은 여느 기름진 땅에서 핀 제비꽃에 못지않게 크고 튼실하다. 나는 생명의 신비가 놀라워 매일 한 번씩 그 제비꽃을 찾아가 본다. 어떤 때는 물이라도 뿌려주고 싶지만 괜히 쓸데없이 간섭하는 것 같아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제비꽃을 바라볼 때면 아무 이유 없이 서글프고 고맙기만 하다.
작은 들꽃은 자신의 위치나 입장을 비관하지 않는다. 씨앗이 자갈밭에 떨어지든 옥토에 떨어지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울 뿐이다. 씨앗이 싹을 틔우든 틔우지 못하든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스스로 썩어서 다음 씨앗을 위한 거름이 된다. 그들은 연약해 보이지만 때론 한없이 강하다. 바람 부는 대로 허리를 굽히지만 그런 부드러움이 강함의 원천이다. 태풍이 나무를 뿌리 뽑을 수는 있어도 작은 풀잎의 허리를 꺾을 수는 없다. 작은 풀꽃 하나에서도 배울 바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絶壁雖危花笑立’이라는 말이 있다. ‘꽃은 위태로운 절벽에서도 웃으며 핀다.’라는 뜻이다. 천길 낭떠러지 절벽에서도 꽃은 여느 평지와 똑같이 웃으며 핀다. 낭떠러지를 두려워하고 피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으니 꽃에게서 낭떠러지는 낭떠러지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와는 정반대다. 낭떠러지가 아닌데도 마음속으로 낭떠러지를 만들며 두려워하는 경우가 흔하다. 작은 어려움도 견디지 못하고 엄살을 부린다. 삶에 대해 참으로 의연한 것은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는 저 들꽃이다. 어떤 점에서는 들꽃이 인간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이 글을 쓰다보니 다시 그 제비꽃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지난 이틀간의 연휴동안 잘 있었는지 눈인사를 하러 가봐야겠다. 다행히도 지지난 밤에는 적기는 하지만 비가 내렸다. 작은 빗물도 그에게는 감로수였을 것이다. 제비꽃은 작은 물 한 방울에도 얼마나 감사했을 것인가. 제비꽃은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존재 전체로 사랑할 줄 안다. 비록 말은 없지만 저렇게 곱게 꽃 피운 것만 보아도 그러함을 알 수 있다. 꽃은 절벽에서도 웃으며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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