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샌. 2008. 4. 23. 14:46

이번 총선에서 서울 지역에서의 국회의원 의석 48개 가운데 여당이 40석을 싹쓸이한 것은 뉴타운에 대한 기대가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지역구에 여당 국회의원이 있어야 개발이 쉬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총선 후에 서울시장이 더 이상의 뉴타운 지정은 없을 것이라고 해서 개발 공약만 믿고 한나라당 후보에 표를 찍은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긴 뉴타운으로 개발한다는 풍문만 돌아도 땅값이 몇 배나 뛰니 환장할 노릇이긴 하다. 속았다는 한탄이 나올 만도 하게 생겼다. 그러나 이런 코미디 같은 세태를 보면서 한없이 서글퍼지고 연민이 생기는 걸 어찌할 수 없다. 표를 모으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후보자들보다도 자신의 이익만 좇아 부화뇌동하는 대중들의 어리석음과 탐욕이 더 밉다. 그것은 마치 타죽는 줄도 모르고 뜨거운 불길로 뛰어드는 부나방의 무리와도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구에서 당선된 J 의원은 뉴타운 개발이 되어야 땅값이 오르니 국가경제에도 좋은 일이라고 강변을 했는데 나 같은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부동산값이 오르면 집 없고 땅 없는 서민들의 고통이 커지고,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게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가격 폭등은 미래에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야 집 가진 사람은 횡재한 느낌이 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대가를 온 국민이 짊어져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것이 내가 믿는 세상 돌아가는 원리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쩌면 자본주의의 최대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서민들조차 J 의원이 주장하는 힘의 논리에 쉽게 동조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경제가 발전하지 못해서 자신들이 못 살고 있다는 믿는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감이 기득권층 못지않게 그들에게서도 강하게 나타난다. 진보정당은 좌파적이기 때문에 정강정책은 검토해 보려고도 않는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민중들의 이런 태도를 이해하기 힘들다. 단순히 힘의 논리에 세뇌당하거나 조종당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억울한 부분이 있다. 참으로 어리석고 슬픈 현상이다. 그렇게 속고 살아왔으면서도 더 한없이 속으려고 머리를 텅 비운 채 날 잡아잡수쇼 하는 꼴이다. 못 가진 자들의 이런 어리석음은 가진 자들의 탐욕 못지않게 이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다. 내가 아는 한 젊은 사람은 지난 선거에서 여당 후보에 표를 던졌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엄마가 그렇게 찍으라고 해서였다고 말했다. 그 엄마의 논리는 여당 후보가 돼야 경부운하가 들어서고 그래서 터미널이 건설되면 집값이 더 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엄마보다 나는 똑똑해 보이는 그 친구가 더 미웠다. 그리고 경부운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고민을 과연 그 친구는 얼마나 했는지, 단순히 경제적 욕구가 우선되는 타인의 뜻에 따라 주권을 행사하는 젊음이 슬펐다. 내 생각이나 행동의 동기가 오직 경제적인데만 있다면 그것은 경제적 동물에 다름 아니다. 의식 있는 사람이라면 경제 너머에 있는 현상과 의미들을 고민할 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타운은 꼭 현대판 도시의 새마을 운동 같다. 서울에서 불고 있는 뉴타운 광풍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을 보여주는 특징적 현상이다. 이 시대 최고의 가치는 돈과 자본이다. 그 앞에서 인간을 풍요롭게 했던 고전적 가치들은 차례차례 무릎을 꿇고 있다. 우리는 잘 살게 된다는 황금빛 우상을 경배하는 맘몬의 신도들이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다수의 어리석음과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옛날에는 그래도 종교적, 윤리적으로 억제하는 기능이 있었지만, 지금의 자본주의는 인간의 그런 어리석음과 탐욕을 교묘히 부추기고 있다. 그래서 이득을 얻는 측은 극소수 기득권층에 불과하고, 대다수의 사람과 자연은 황폐화되어가고 있다. 조금만 안으로 눈을 돌려보면 누구나 이런 현실을 목도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하여, 온 생명계의 공존을 위하여, 진실로 민중이 깨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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