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샌. 2008. 3. 28. 14:29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보고 싶지 않은 신문, 조선일보를 요즈음 들어서는 가끔 들쳐보고 있다.'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이라는 연재물 때문이다. 오늘 신문에 실린 시가 이것인데, 일독했을 때 문득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을 받았다. 길들여진 길, 편안한 길을 주저없이 가는데 대한 자기 반성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치열하게 산다고 하는 몸부림이 결국은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도는 꼴이 아니었던가. 이탈의 자유를 꿈만 꿨지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상처받는 것을 무서워하고 뒤로 숨어버리지는 않았던가 하고.

이 시는 문태준 시인이 추천했는데, 그의 해설 역시 곰곰 되씹어볼 만 하다.

'이 아침에도 우리의 목전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낯익고 평탄한 길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길이 있다. 소의 잔등처럼 유순하고 완만하고 반듯해진 길이 있고, 나아갈 틈이 없는 가시넝쿨을 헤치듯 누군가 처음으로 개시해야 하는 길도 있다. 그러나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인 우리는 각지고 불규칙한 길보단 대열의 후미에서 앞의 궤적을 뒤따라가고 싶어진다. 은근슬쩍 길들여졌으므로 이 순응을 등지고 뒤짚는 일은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어렵다. 이 시는 우리 마음에 악착스레 붙어있는 순응주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보통 사람들의 비겁과 안일에 대해 울화통을 터뜨린다. 앞선 행로에 기생하여 '꼬리를 물고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야멸차게 묻는다. 좌충우돌이면 어떠냐고, 뒤죽박죽이면 어떠냐고 묻는다. 풍파, 그것이 우리들 삶의 표정이며,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므로 안주하려 하거나 상처받지 않으려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 사는 일이 지치고 가야 할 길이 막막할 때 스스로를 이렇게 불러보자. "주인공아!" 생념(生念)이라 했으니 엄두를 내보자. 박약한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자. 당신은 당신의 삶의 후견인. 아무도 간 적 없는 길을 당신이 앞서가고 앞서간 당신을 당신이 뒤따라가는 것. 야단법석인 이 삶을 살아가야 할 주인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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