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드라이브 나가자든 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 번째,
첫 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이 아니라 늘 다음,인
언제나 나중,인 홍길동 같은 서자,인 변방,인
부적합,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처럼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움의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락을 슬쩍슬쩍 올리며
조용히 웃곤 할 것 밀교인 듯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 나는야 세컨드 1 / 김경미
세컨드의 법칙이라.... 한 발 물러서는 것, 앞서 가려는 사람들 미리 보내고 느릿느릿 편안하게 뒤따라 가는 것, 적자생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세상의 소란에서 비켜 있는 것, 본처의 당당함이 아닌 세컨드의 조심스러움, 당신이 떠난다면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그런 것일까?
시의 느낌이 특이해서 좋다. 시원한 바람 한 줄기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다. 요사이 말로 하면 쿨하다고 할까.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 이 정도의 당당한 세컨드라면, 난장이들만 횡행하는 이 시대의 퍼스트가 아닐까?
'나는야 세컨드'는 시인의 연작 작품들이다. 같은 제목의 이시도 재미있다.
서로가 첫번째인 혼인하고 아이 낳고
부부라 불리지만 왠지 항상 당신의
첩인 것만 같아요
당신도 항상 나의 그것인 것만 같지요
당신이 태어나자마자 죽은 본부인이
이 하늘 밑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어
당신 마음의 제일 좋은 곳을 발라먹고
나 태어나자마자 죽은 내 본남편 있어
귓속에 집을 짓고 끝없이 훌훌 떠날 것을
속삭이는 듯하지요
그러나 모두들 한여름 흰 치잣빛 낮잠처럼
어쩌면 그렇게 태연한 연분의 표정들인지
가을 따라 눈썹 몇 번쯤 깜박이면 시야도 창호지 너머처럼 뿌옇게 스러져
스러지다 촛불 탁 엎어지면, 그제서야 본댁으로들
각각 돌아가, 삶,이라는 불륜,에 대해 무슨 용서와
고통을 치를지, 보지 못한 태생 저편의 본가가 살수록
그립고 궁금치 않은지요
- 나는야 세컨드 3 /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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