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아씨를 만나러 아내와 같이 수리산을 찾아갔다. 그러나 변산아씨는 빗장을 꼭 잠그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서 그 고운 자태를 숨기고만 있었다.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수암봉에 올랐다.
제 3 산림욕장에서 시작하여 네거리 쉼터를 거쳐 수암봉에 오른 뒤 삼거리를 지나 담배촌으로 내려왔다. 약 두 시간여의 산행 중 수암봉에서 삼거리까지의 능선길이 제일 좋았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걸을 때만큼 행복할 때도 없다. 살아있다는 존재감에 절로 감사하고 행복해지는 때다. 무엇을 가지고 못 가지고는 별로 의미가 없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 뭇 생명들과 함께 숨을 쉬고 보고 느끼며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 같고 그지없이 고마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산길을 걸을 때 느끼는 이 황홀경을 나는 사랑한다.
수암봉(秀岩峰)은 높이 395 m의 수리산 줄기에 있는 한 봉우리다. 이름 그대로 큰 암반이 줄기 가운데서 우뚝 돌출해 있다.주위에 높은 산이 별로 없어 사방으로 보이는 전망이 환하다. 동쪽 방향으로는 수리산 정상이 보이고 그 너머로 안양 시내의 일부가 보인다. 옆 등산객에게 물으니 비산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래로는 외곽순환도로가 지나고 있다.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산꼭대기까지 전해지는 것이 아쉬움이었다.
변산아씨가 살고 있는 계곡은 아직 겨울이었다. 계곡에는 얼음이 아직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런 풍경을 비교할 때 예년에 비해서 봄이 두 주 정도 늦는 것 같다. 따라서 봄꽃 소식도 그만큼 늦어질 것이다. 다음 주 쯤에 다시 한 번 변산아씨 집을 찾아봐야겠다. 나의 봄은 변산아씨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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