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입맞춤 / 이영옥

샌. 2008. 1. 20. 19:03

그대와 눈을 감고 입맞춤을 한다면 그것은 내 안에서 일어난 수천 개의 바람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빛나는 계절 뒤에 떼로 몰려오는 너의 허전한 바람을 마중해주는 일이며 빈 가지에 단 한 잎 남아 바르르 떠는 내 마른 울음에 그대가 귀를 대보는 일이다 서로의 늑골 사이에서 적막하게 웅성거리고 있던 외로움을 꼼꼼하게 만져주는 일이며 서로의 텅 빈 마음처럼 외골수로 남아 있던 뭉근한 붉은 살점 한 덩이를 기꺼이 내밀어 보는 일이고 혀 밑에 감춰둔 다른 서러움을 기꺼이 맛보는 일이다 맑은 눈물이 스민 내가 발뒤꿈치를 들고 오래 흔들리고 있었던 그대 뜨거운 삶의 중심부를 가만히 들어 올려주는 일이다

- 입맞춤 / 이영옥

우리는 왜 이렇게 외로우면서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 무엇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은채워질 수없는 근원적인 갈망이고 동경이다.아마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는끝모를 공허가 자리잡고 있는지 모른다.

잃어버린 반쪽의 자리는 영원히 텅 비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사랑에 허기져 있는지 모른다.그래서 외롭고 서러운 사람들끼리 서로 포옹하고 입맞춤하며 하나가 되고 싶어한다. 입맞춤은 혀 밑에 감춰둔 너의 서러움을 기꺼이 맛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서러움은 서러움으로 인하여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입맞춤은종국에는 절대와의 입맞춤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에로스는 아가페와 이어져 있다. 입맞춤이 단순한 육체적 쾌락만은 아니다. 성(性)과 성(聖)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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