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어느 여중생의 유서

샌. 2008. 1. 3. 08:49

안녕?... 모두들...


내가 자살하기 하루 전에 쓰는 글이야. 왠지 슬퍼. 내가 죽기 때문일까, 내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들 때문일까, 아님 내가 죽어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버젓이 돌아갈 세상 때문일까?..


나는 말이야.. 유치원 약 3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2년 하고도 약 2개월.. 약 11년 조금 넘게 공부를 했어. 그동안 여러가질 배웠고, 인권선언, 미국의 독립선언, 또 뭐 있더라.. 천부인권설.. 음, 더 기억이 안나네.. 내 무식이 드러나나 봐.. ㅎㅎ...


아무튼 저런 것을 보면서 난 생각했었어.. 인간은 항상 자유를 추구하는구나.. 나도 자유로운 사람이 돼야지 라고 생각했었어.


근데 현실은 너무 달라. 상상 이상으로 너무 달라. 공부 힘들어 자살하는 사람들.. 다 남 이야기 같았어. 하지만 아니야. 공부 공부 공부 공부. 좁디좁은 교실에 선풍기 4대, 히터 2대, 40명이 넘는 아이들.. 같은 곳에서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오직 한 가지만 배우고 있었어. ‘대학 가는 법’.. 슬펐어. 한창 웃고 떠들고 싶은 시기인 나에겐.. 그리고 친구들도..


다 힘들겠지. 난 겁쟁이야. 이런 어려움 하나 이겨내지 못하는 나는 겁쟁이라고. 나도 잘 알아. 날 비난하겠지. 조금만 버티면 대학 가고, 조금만 버티면 취직해서, 조금만 버티면 결혼하고, 조금만 버티면 엄마가 될 텐데, 왜 자살해? 라고 코웃음 칠 거야..


친구들은 나한테 말해. 넌 고민 따윈 없어 보여. 니가 부러워. 그 웃는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그런 말을 하더라. 하지만..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나는 니들이 생각하는 거만큼 착한 아인 아니었어.


아..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다. 이거 그래도 유언인데..


사랑하는 친구들아. 너무 힘들었어. 이거 쓰는데 왜 이렇게 눈시울이 붉어지니.. 눈이 아퍼, 근데 그래도 죽고 싶어.


내가 죽는다고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거야. 선생님들의 강력한 몽둥이도.. 선생님들의 강력한 두발규제도.. 선생님들의 공부 공부 소리.. 사회의 공부 공부 공부 공부...


난 사실 평범한 여중생일 뿐이야. 노래 부르길 좋아하고, 그림 그리길 좋아하고, 수다 떨길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하지만 사회는 내게 그걸 바라지 않아. 같은 머리, 같은 옷, 그리고 같은 공부. 좁디좁은 교실에 아이들을 구겨 넣고 선풍기 4대와 히터 2대, 그리고 선생님..


슬퍼, 이 세상이. 그리고 너네들이.


난, 후회하지 않아. 왜냐면, 이 세상은 더러우니까. 망할 세상, 망할 교육, 망할 선생, 망할 나.. 후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 죽으면 끝이지만.. 그럼.. 사랑하고 사랑했던 친구들, 엄마, 아빠, 00야...


미안해. 시험기간에 괜히 정신 어지럽혀서 말이야. 그래도, 나도 엄마가 되고 싶었고, 진짜 강렬한 사랑도 해보고 싶었고, 한눈에 반한다는 게 뭔지 알고도 싶었고, 가수도 되보고 싶었고, 화가도 되보고 싶었고, 음악가도 되보고 싶었어.


그래도 난 겁쟁이라서,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없어서, 이런 미친 짓을 하는 거 같아.


그럼.. 진짜 안녕..


어느 날 죽어버린 겁쟁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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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작년에 스스로삶을 마감한 한 여중생이 세상에 남긴 유서다.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린 영혼의 아픔이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사랑도 해보고 싶었고, 엄마가 되고도 싶었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는소녀는 왜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만약 이 소녀가 내 딸이고, 내 동생이었다면심정이 어떠했을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나약한 겁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아니면,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나쁜 교육제도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고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해 보게 될까?

많은 부모들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다. 인수위원회에서 어제 교육부에 대한 국정보고가 있었고, 그분의 공약대로 당장 교육계가 대수술을 받게 될 모양이다. 분권과 자율이라는 명목하에 평준화 정책이 폐지되고 시장주의에 입각한 경쟁 논리가 학교 현장에도 그대로 수용되는 것이다. 앞으로 성적과 진학률에 대한 압박감이 학교와 학생을 더욱 짓누르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더 혹독한 환경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난 대선이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느냐에 대해서는 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대선 결과에 대해서는 서운하기만 하다. 살 만한 세상에 대한 희망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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