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신문 읽는 여자

샌. 2008. 1. 2. 12:07

신문을 진지하게읽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아름답게 보인다. 남자가 신문을 보는 것은 눈에 띄는 일이 아닌데, 여자의 경우는 왜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이것은 여성이 원래 정치나 사회적인 현상에 남성보다 관심이 덜 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은 스스로 남편을 통해 세상을 읽으려 하며, 그것이 예의인 줄 알고 있지나 않나 하고 말이다.

아직도 많은 여자들이 가정에서 남편을 통해 세상을 읽으려 한다. 몇몇 여자들과 세상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남편의 생각을 대신 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이제까지의 가부장적 구조가 무의식적으로 여성을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서기 보다는 부권[父權, 夫權]에 종속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남편과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평안을 느끼는 것이 여성의 본능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또한 가부장 사회를 유지하고 여성이 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데 족쇄가 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여자가 자신이 바라는 학문의 길을 계속 가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계기가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하나는 '가족'인데, 여자의 꿈을 막는 세력은 가부장 구조와 전통적 정리(情理)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가족이라는 이름의 내부의 적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딸의 학업을 결혼과 기존의 가족제도에 편입시키려는 장치로만 이해하는 편견이 강고해 여자가 추구하는 '자유의 길'을 제약한다.

다른 하나는 백마 탄 왕자의 출현이란다. 가족이라는 역장(力場)은 또 다른 가족의 복제나 재생산을 하도록 강요하면서,많은 여학생들을 능력 있는 남자의 품에 들기 위해서 뽀오얀 치마를 휘날리면서 대학에 다니는 꽃들로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여자들이 화장품에 소비하는 돈이나 화장 시간이 세계 상위권이고, 교문을 나서는 여대생들 무리를 보고 어느 외국인이 창녀촌에 온 줄 알았다는 시니컬한 반응에서 우리 사회가 아직도 권위적 가부장적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여권(女權)은 여자가 한 인간으로 독립적으로 당당히 서는 일이다. 남편과 적당히 가사를 분담하고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하는 따위가 아니라 실질적 의미에서 자유인이 되는 것이 여권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우리 사회의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대응하는 나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아내들이 신문을 멀리하려는 심리 속에는 남편을 통하지 않고는 세상과 접촉하지 않겠다는 정절 심리가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너무 가혹한 해석인가. 만약 작은 진실이라도 그 속에 들어있다면 진지하게 신문을 읽는 여자야말로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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