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의 책을 읽어 보고 싶었던 차에 동료의 책꽂이에서 ‘인간 폐지’를 발견하고 빌려 보았다. 이 책은 루이스가 1943년에 한 강연의 내용인데, 상대주의 문명을 비판하면서 교육이나 세상의 기초가 절대적인 가치 기준의 인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절대’라는 개념을 위험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행해진 인간의 만행들이 늘 그런 이름으로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상대주의보다 더 위험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절대주의이다. 특히 종교에서 ‘절대’라는 말이 붙으면 배타적이 되고 편협해진다. 진리독점주의의 폐해는 현재도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지금 분당에 있는 한 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한 봉사 단체가 탈레반에게 납치되어 나라가 시끄럽다.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그동안 지적되고 있었다. 다른 종교나 전래의 풍습을 도외시하고 오직 복음 전파만을 목적으로 젊은이들을 위험 지역에 몰아넣는 단체에서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가난하고 핍박 받는 아프가니스탄을 아끼는 진정한 방법이 아니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고, 기독교만이 참 종교라고 하는 절대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런 종교 갈등, 문명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절대’라는 말은 믿지 않기로 했다. 인간의 이성으로 헤아릴 수 없으므로 ‘절대’가 될 수 있다면, ‘절대’를 인정하는 것과 이것이 ‘절대’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것만이 참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의 본질이 아니다.
루이스는 이 책에서 도(道)라는 온건한 표현을 쓰면서 상대주의가 범람하는 세상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도덕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절대적 가치관을 중시하는 그의 주장은 옳다. 그렇지 못할 때 나타날 미래 세계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인간 폐지’의 무리들로 되어 있을 것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에 의한 자연 정복이 이루어졌을 때 결국 인간은 스스로에 의해서 정복당한 꼴과 다름 아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에 불과하다.
루이스는 절대적 가치관은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모든 시대와 민족과 문화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객관적 실재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망각하거나 거부할 때 인간이 짐승이 되는 ‘인간 폐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 문명에서 그런 징조를 읽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도, 즉 절대적 가치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인 루이스로서는 성경에 계시된 신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다면 당연히 신의 은총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 문명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루이스는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만이 절대 진리라고 주장하는 데서 다시 발생한다. 물론 루이스는 다른 종교나 가르침에 대해 배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도덕률이나 절대적 가치 기준이 없이는 반인간적인 세상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경박하고 충동적 인간으로 이루어진 욕구 만족형 사회는 이미 그 자체로 지옥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종교적 교리나 철학적 도그마가 그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고 본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분법적 논리에 젖어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인간이 과연 ‘절대’라는 말을 쓸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 너머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머리 속에서는 이미 ‘절대’라는 개념은 폐기처분 되었고, 그런 말이 들어간 주장들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내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감수성, 밤하늘의 별을 보며 경탄하는 경외감, 그리고 이웃에 대한 따스한 배려심 같은 가치들이다. 이런 것들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 현대 문명은 인간의 머리와 배를 잔뜩 불려 놓았지만, 그 둘에 눌려 가슴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아져 버렸다. 이 시대에 우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가슴에 대해 슬퍼해야 할 것이다. 참살이의 기초는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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