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파피용

샌. 2007. 8. 12. 16:42

'파피용'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최신작 SF 소설이다. '개미'와 '타나토노트'를 통해 베르베르의 기발한 착상과 상상력에 감탄한 바 있기에 이 소설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너무 컸었던 기대 탓일까, 앞에서와 같았던 신선한 충격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도 읽는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 역시 베르베르의 이야기라는상찬을 받을 만한 내용이다.

천재 과학자 이브는 종말을 향해 치닫는 지구를 탈출하기 위해 대형 우주선 파피용을 건조한다. 크기는 길이가 32km, 지름이 500m인 원통형으로, 인공중력을 만들어 지구 환경을 재현한다. 그리고 144000명을 선발해서 2광년 떨어져 있는 미지의 행성을 향해 출발한다. 이 우주선의 추진력은 광자의 압력을 이용한 것으로 두 개의 거대한 돛이 달린 우주 범선이다.

이 우주선은 하나의 작은 지구로 폐쇄된 생태계를 이루며, 이 프로젝트를 계획한 주동자들은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한다. 그것은 탑승할 사람을 선발하는 엄격한 규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정치인, 군인, 목사는 제외시켰다는 사실이다. 권력과 폭력, 신앙이야말로 인간의 파괴본능을 부추기는 주범이며,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사회가 정부, 군대, 종교가 없는 사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던 우주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폭력 사건이 일어나며 지구와 같은 전철을 밟는다. 감옥이 생기고, 법이 만들어지고, 경찰과 정부가 조직되면서 갈등과 전쟁이 반복된다. 인간 유전자에 내재된 폭력성을 인위적으로는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며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를 떠난지 수백년이 지나고, 그동안여러 차례의 공포정치와 종교전쟁이 일어난다. 그동안 내부 생태계는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어 1천년이 지나서는 폐허 상태로 변하고, 얼마 되지 않은 생존자들은 수렵원시단계의 수준으로 떨어진다.지구를 떠난지 1251년이 지났을 때 드디어 목표로 했던 행성에 접근하는데, 그때 남아있는 사람은 여섯명에 불과했다.

마지막으로 남녀 두 명이 착륙선에 타고 행성 표면에 닿는데 이들은 착륙선에 실린 지구 동물들의 수정란을 이용하여 동물들을 만든다. 지구의 생명체들을 재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유일한짝인 여자마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자 남자는 인간 수정란을 이용해 여자를 만든다. 이 과정의 이야기는 창세기 설화와 비교되는 바가 많다. 베르베르는 종교적 의미를 띈 유머를 써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우주선에 탑승한 144000명이라는 숫자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 세상 마지막 날에 구원 받는 숫자인 것이다. 그리고 우주선도 노아의 방주 개념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된다.

우주 생명은 지적 생명체를 이용해 끝없이 퍼져나가려고 한다.이 지구도 다른 데서 건너온 생명의 씨앗일 것이다. 그러나 생명체의 끝없는 자기확장욕은 행성 환경을 파괴하고 다시 또 다른 행성을 찾아 나서게 만든다. 똑 같은 반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유년기의 한 때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그런 느낌을 자연스레 받는다. SF 소설은 인간의 상상력을 한껏 펼칠 수 있어서 좋다. 스케일이 큰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을 읽는 동안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척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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