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김혜자 님이 쓴 책제목이다. 책을 읽어보지 않았는데도 책제목이 인상적이어서 가끔씩 이 말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말이 폭력의 충동을 억제시켜 주는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원래 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서양의 어느 교육철학자가 쓴 책제목인데, 그걸 김혜자 님이 인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 방법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일선 학교에서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폭력적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 매가 필요하냐 아니냐는 지금도 논란거리이고 각 나라마다 사정이 각기 다르다. 그리고 학교만 따로 떼어놓고 볼 수도 없다. 부모에 의한 가정폭력, 그리고 사회폭력이 존재하는 한 학교에서의 교사에 의한 체벌만 논의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렇더라도 학교 현장에서 행해지는 매와 강압은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때가 많다. 저녁 회식자리 같은 데서 교사들이 모이면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어떻게 제압하고 혼내주었는지 마치 무용담을 얘기하듯이 떠드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심할 때는 ‘박살을 냈다’라는 표현까지 쓰며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자랑한다. 물론 교사 개인의 철학의 문제지만 말 안 듣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을 훈육하는 데는 매가 제일 효과가 있다는 데에 대해서는 대부분 생각이 같으며 많은 교사들이 그런 방법을 쓰고 있다. 아직까지는 소수의 교사들만이 거기에 회의를 가지고 반대를 한다.
매는 당장의 효과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고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고민 없이 행해지는 체벌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의도로 포장되더라도 반인간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수반되는 폭력성과 권위주의가 아이의 인성에 심각한 상처를 남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버릇 고치려다가 더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은 이런 부작용이 나는 많다고 보는데, 비록 적은 숫자에 그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체벌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다.
학창 시절에 교사로부터 폭행당한 사람은 그것이 지금도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다는 것은 사람들과 얘기하다보면 자주 듣게 된다. 물론 거기에는 양면적인 성격이 있기는 하다. 우리를 열성적으로 가르쳐주신 선생님이라는 인식과 공존하는 그런 부정적 의식은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흉금을 터놓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교사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어 깜짝 놀라게 된다. 결국 성장기에서 폭력 체험은 극히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당사자의 인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도 가정이나 학교에서 매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집단이나 개인을 통제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나는 교사로서, 부모로서 많은 실수를 저지르면서 살아왔다. 젊었을 때는 매를 들어서라도 아이를 인간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배경에는 아이들은 미숙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라는 기본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니 과거의 내 행동에는 참으로 부끄러운 기억들이 많다. 내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런 오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철없는 사람이 부모와 교사 노릇을 했으니 그 상황이 오죽했겠는가. 가끔씩 부모 자격증도 있어야 한다는 농담을 하는데, 그런 자격증을 따야 부모가 될 수 있었다면 나는 결혼을 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는 거의 폭력적인 방법은 쓰지 않는다. 물리적인 매는 말할 것도 없고 언어적 폭력도 의식적으로 노력하며 피하려 한다. 매를 들어서라도 인간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지만 이젠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회의하게 되었다. 혹 그것이 체제에 순응하고 권위에 굴복하는, 교사나 부모의 지시에 잘 따르는 착한 인간을 의미한다면 획일적인 행진보다는 나는 차라리 무질서를 선택할 것이다. 사실 가정이나 학교란 곳이 어느 면에서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그대로 후세에 주입시키는 훈련소에 다름 아니다. 물론 거기에도 아름다운 가치가 들어있고 계속 지켜나가야 할 부분도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혈육간의 정이야말로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 기초 요소다. 반면에 혈육 관계라는 미명으로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가정 폭력은 아직도 여전하다. 많은 부모들은 그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어떤 면에서는 절대 명제다. 그 말이 암시하는 의미는 의외로 깊고 심오하다. 그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이고, 생명의 존귀함과 겸손을 아는 사람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경구이다. 착하고 순수한 어린 영혼들은 무조건적으로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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