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내 안에 나무 이야기

샌. 2007. 6. 14. 09:04



서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상벽 님의 사진전 '내 안에 나무 이야기'에 다녀왔다. 우선 TV를 통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상벽이라는 사람이 사진전을 열었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그리고 사진전의 소재가 내 관심 분야인 나무에 대한 것이라서 더욱 기대가 컸다.

방송에서 여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만 알고 있던 분이 갑자기 사진전을 열었다고 하니 처음에는 무척 놀랐다. 참 재주가 많은 분이구나 싶기도 했지만, 2년 남짓 되는 기간 동안 아무리 열심히 찍는다고 한들 과연 전시회를 할 정도의 작품 수준이 나올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님은 예전에 사진을 부전공으로 하고 늘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탄탄한 바탕에서 이번과 같은 좋은 전시회가 열리지 않았나 싶다. 노력 없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없다.

나무를 소재로 한 사진들은 내용적으로도 아주 좋았다.무언가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사진들이었고, 관람자의 감성을 자극하며 눈길을 오래 머물게 했다. 저런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나는 안다. 사진은 빛이 예술이구나 하는 것을 이번 사진전을 보면서 새삼 다시 느꼈다.

개인적으로도 나무에 관심이 많지만 이런 나무를 소재로 한 사진을 나도 찍고 싶은 바람이 크다. 퇴직한 뒤에 한 2, 3년 자유롭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보고도 싶다. 무언가에 몰두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특히 그 몰두가 예술 세계일 때 아름다움은 더욱 빛을 발한다. 전시회장에서 손님들을 맞고 있는 이상벽 님을 보면서 무척 부러웠다.

안내 팜플렛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초행길 치고는 실로 긴 여정이었다. 동트기가 무섭게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하루에도 몇 구비씩 산허리를 돌아 개울을 건너다니며 쉴 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제법 등산이랍시고 십 수 년을 했음에도 발에 물집이 잡히고 사타구니엔 번갈아 가래토시가 섰다. 말 그대로 코피 쏟아 가면서 드디어 서울하고도 광화문 한복판에다 필름더미를 덜썩 쏟아놓기에 이르렀다.

솔직히 겁도 나지만 한편으로 기대감도 크다. 한때 방송 연예계 아우들을 끌어모아사진동아리 줄반장 노릇도 했었으니 사진이 결코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작업이 힘겨울 때는 괜한 고생을 사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싶을 때도 없지 않았다. 더구나 최병관 작가의 이해하기 어려운 주문에 혼란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생산마저 중단된 FM2 바디에다 렌즈 서너 개를 메모해 주었다. 고화수 디카 시대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힘들었던 건 사진을 만드는데 있어서 그 첫 번째가 노 트리밍이다. 허긴 나도 생방체질이니까 현장에서 모든 걸 다 끝내자는게 할 수만 있으면 나쁠 건 없다는 생각으로 이해는 했다. 그 다음으로는 괜한 장난치지 말고 자연색 그대로 만들 것, 즉 노 필터였다. 그리고 잡빛도 엄연한 빛이므로 인위적으로 차단하지 말라는 노 후드, 아무튼 독한 선생 만나 정말 피나게 돌아다녔다.

나에게 나무는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 나무이야기를 사진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그 중에 어떤 나무는 자다가 뛰어나가기도 했고, 해가 꼴깍 넘어간 시간에도 허겁지겁 달려간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만큼 자연 속에서 만들어진 사진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올해로 방송생활 마흔 번째가 되지만 정작 마이크를 딱 놓고 사진작업에만 빠져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 같으면 갈수록 빠지면 빠졌지 내 의지로 돌아서기엔 이미 깊이 들어왔다. 두렵지만 지금 난 행복하다....'






'나무는 배알도 없는 모양이다. 봄이면 꽃을 만들어 온갖 벌, 나비를 불러들이고, 그윽한 향기를 뿜어 겨우내 꽉 막혔던 사람들 오간장을 풀어 준다. 여름이면 푸르고 싱그런 잎새들을 다 쏟아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쏟아지는 빗물을 다 마셔뒀다가 깊은 산속 옹달샘으로도 보내고, 논밭으로 나눠 주기도 한다. 그러기도 바쁜 마당에 가을이면 또 열매를 가득 싣고 오가는 산새들, 다람쥐 같은 들짐승 모두를 거둔다. 그렇게 세월이 묵어 높다란 아름드리가 되면 마지막 쓰임새를 찾아 뉘집 재목이 되어주기도 하고, 그도저도 아니면 가난뱅이네 땔감이 되든지 부지깽이 노릇이라고 하고 삶을 마친다.'




'친구처럼 자매처럼 이제 겨우 예닐곱 살이나 돼 보이는 잣나무 두 그루는 그렇게 나란히 서 있었다. 둘은 너무나 닮은 꼴이어서 한 번에 올라와 나란히 뿌리를 내린 게 분명해 보였다. 근래 생긴 별장촌에서 그 넘어 낚시터로 가는 언덕배기엔 누군가 메밀밭을 일궈놓았고, 실바람만 불어도 흰 꽃들이 나풀나풀 춤을 추었다. 즈이들끼리 그렇게 잘도 어울려 사는가보다 싶더니만, 미쳐 갈겆이가 끝나기도 전에 그 모든 것들이 깡그리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이었다. 미처 까닭을 묻고 자실 겨를도 없이, 불도저 서너 대가 뻔질나게 부릉부릉 거리더니 이내 아파트 신축공사장 팻말이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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