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비주류는 내 본능이다

샌. 2007. 2. 22. 15:38

서점에서 아이쇼핑을 즐깁니다. 온갖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서로 자기를 봐달라고 예쁘게 치장을 하고 줄지어 앉아있습니다. 우선은 책의 제목에 따라 조심스레 손길이 끌려집니다. 대개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만 어떨 때는 숨어있는 보물을 발견하듯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습니다.

장석주 시인이 쓴 '비주류 본능'이라는 산문집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순전히 제목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 제목에 이끌리게 된 것은 나에게도 비주류 본능이 숨어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삶과 생각을 보면 나도 아웃사이더 쪽으로 기울어지는 편입니다.나는 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비주류 본능을 느낍니다. 20대 때 '아웃사이더'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콜린 윌슨이라는 저자의 이름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혹시나 이 책을 구할 수 있을까 하여 책방에서 찾아보지만 재발행이 되지 않는지 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비주류 본능'의 서문에 나오는 글이 또한 재미있군요. 여기에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비주류는 내 본능이다.

비주류는 언제나 바깥이고 변두리고 비(非, B)급이고 3류다.

비주류는 흑인, 여성, 비정규직, 외국인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동성애자, 광인, 광대패, 게릴라, 이단, 인디밴드, 독립영화다.

소수자다.

한때는 예수, 석가모니, 노자, 장자, 허균, 연암 박지원, 이덕무, 오원 장승업, 스스로 눈을 찌른 화가 최북, 빈센트 반 고흐, 체 게바라, 이중섭, 박수근, 권진규, 김수영, 김종삼, 천상병 등도 비주류였다.

비주류는 출세와 명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니까.

비주류가 주류에 무단으로 끼어들면 틀림없이 까탈이 생기고

당장에 미운 털 박힌다.

한때 나는 주류에 편입되었다고 착각한 적이 있다.

기사 딸린 차를 타고 정장을 입고 고급사교클럽에 드나들며

주류를 사칭했다.

그래서 혹독하게 당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생각을 추호도 없다.

그 뒤로 나는 그냥 비주류로 살기로 작정했다.

서울을 떠나 시골로 왔다.

서울이 돈과 권력과 문화가 집중되는 주류의 영역이라면,

시골은 돈과 권력과 문화가 없는 비주류의 영역이다.

주류는 부르주아다. 기득권자다. 성골(聖骨)이다. 적자(嫡子)다.

비주류는 보헤미안이다. 마녀다. 무당이다. 서얼이다. 히피다. 떠돌이다. 실직자다. 무학력자다.

주류가 비단옷을 입는다면 비주류는 베옷을 입는다.

주류가 비단금침 속에서 잠을 잔다면 비주류는 무명이불을 덮는다.

주류가 대궐을 짓는다면 비주류는 정자를 짓는다.

주류가 비싼 수입양주를 마신다면 비주류는 소주나 막걸리를 마신다.

비주류의 표지는 만성적 가계적자, 느림, 불편함, 누추함, 고집, 낙후, 저발전, 대안교육, 자연요법, 명상, 생태학, 유기농법 등이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는 시비 거는 자들이 많았으나 자발적으로 시골에 오니 아무도 시비 걸지 않는다.

오히려 잘했다고 한다.

귀농이라는 그럴 듯한 포장까지 해주며 칭찬했다.

그 말은 다시 서울 올 생각 말고 낙후된 시골에 엎드려 살라는 뜻이다.

그래서 기꺼이 엎드리겠다고 했다.

집 이름도 엎드려 사는 자의 집이란 뜻으로 '수졸재'라고 지었다.

그랬더니 주류는 비로소 나에 대한 경계와 의심을 풀고 안심했다.

비주류는 내 본능이다.

그러나 비주류라고 늘 고분고분한 것은 아니다.

비주류도 목을 죄면 저항한다.

대개 목을 죄는 손들은 보이지 않는다.

가면 뒤에 숨을 얼굴들이다.

그 실체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거대자본과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거대언론과 기득권을 연년세세 가지려는 권력이다.

숨통이 끊어져라 목을 죄는데도 가만히 있는 건 벌레다.

비주류는 벌레가 아니다.

비주류가 저항할 때는 치열해지는데 그것은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목을 죄는 손에 전갈의 독을 쏜다.

독을 쏘고 전갈은 죽음을 맞는다.

세상을 바꾸는 건 주류가 아니다. 자기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비주류가 세상을 바꾼다.

주류는 세상이 바뀔까 봐 두려워한다. 세상이 바뀔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위기라고 떠든다.

비주류가 세상을 바꾸었다고 비주류가 세상의 중심이 되지는 않는다.

비주류는 세상의 바깥으로, 변두리로 나간다.

비주류가 중심에 있으면 혼란과 불안만 커진다.

비주류는 바깥에 있을 때만 비주류다.

비주류는 혁명의 동력이 나오는 근원이다.

비주류는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다.

비주류 본능은 내 힘, 내 경쟁력이다.

나는 당당한 비주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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