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밀양

샌. 2007. 6. 5. 12:59

중앙시네마에서 영화 ‘밀양’을 보았다. ‘밀양’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만큼 화제작인데다 인간의 고통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해서 관심이 컸다. 그런데 왠 일, 300석 가까운 좌석에 고작 10여명이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아무리 이른 저녁 시간이지만 텅 빈 좌석이 너무 쓸쓸했다.


‘밀양’은 고통과 용서라는 무거운 주제를 그런대로 잘 소화해 낸 작품이었다. 직접적으로는 한 인간에게 가해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무게에 가슴 아팠고, 더 나아가서는 고통을 대하는 종교와 종교인들의 태도와 한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전도연이 분한 신애는 극한의 고통에 몰리고 결국 신앙에서 도피처를 찾는다. 그러나 유괴범을 면회 갔을 때 유괴범이 천연덕스럽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하는 말에서 그녀는 충격을 받는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왜 먼저 하나님이 용서하시냐?”는 절규는 너무나 쉽게 용서와 구원을 말하는 종교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한다. 이 영화의 후반부에는 교회와 신도들이 자주 나오고, 그리고 많은 부분이 믿음의 가벼움과 한계를 그리고 있다. 그들도 신애를 걱정하고 위로하기 위해 애쓰지만 그것은 왠지 표피적이고 경박스럽기만 하다. 고통의 경험과 가난의 체험을 가지지 못한 교회는 사막의 신기루일 뿐이다. 겉으로는 푸른 초원에 생명이 있는 것 같아도, 가까이 다다가 보면 건조한 사막에 불과하다. 딱딱하고 죽은 교리는 인간을 살리지 못한다. 영화는 신도들의 그런 위선을 고발하려 한다. 야외 교회 모임에서 목사의 기도 중에 신애가 앰프에 몰래 가요 테이프를 넣어서 ‘거짓말이야’라는 노래가 기도와 함께 울리는 장면은 무척 재미있었다.


결국 신애는 속물이라고 부르는 이웃들을 통해 삶의 희망을 발견한다. 송강호가 분한 종찬이 그렇고, 이웃집 옷가게 주인이 그렇다. 신애는 그들과 함께 함으로써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웃을 수가 있었다. 결국 구원을 말하지 않는 곳에 구원이 있고, 용서를 말하지 않는 곳에 용서의 가능성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집 뒤란 버려진 땅에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장면이다. ‘밀양(密陽, Secret Sunshine)’은 가장 가까운 곳, 바로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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