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과학과 산업혁명은 왜 유럽에서 시작되었을까?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했는데, 반대로 인디언들이 유럽을 정복할 수는 없었을까?같은 지구상에서 한 쪽은 문명이 번성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왜 아직도 수렵채집의 원시사회에 머물러 있을까? 이런 의문들에 대한 명쾌한해답을 말해 주는 책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다. 빙하기가 끝난 뒤부터 13000여년 간의 인류문명사이며,대륙마다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이 다르게 전개된 이유를 밝힌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머리 속이 말끔이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자의 결론은 한 마디로 각 대륙 사람들이 경험한 역사가 달라진 것은 지리적,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사회에 미치는 지리적 결정론이다. 인종의 차이, 또는 타고난 지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자연 환경에서 살았는가에 따라 문명의 발전 속도에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문명은 농업혁명에서 시작되었다. 수렵채집의 원시사회에서 농업은 식량 생산을 증가시켜 정주형 사회가 가능하게 했고 그것이 인구가 많아지고 조밀해지며 계층화된 사회로 발전하게 된다. 잉여식량은 전문화된 집단을 만들고 거기서 기술이나 문자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고도의 정치 조직을 갖춘 사회로 발전한다. 고대 문명의 발생지들이 바로 그런 지역들이다.
그런데 왜 특정 지역에서 농업혁명이 먼저 시작되었는가?
저자는가축화나 작물화의 재료인 야생 동식물의 대륙간 차이 때문이라고 여러 자료를 제시하며 자세히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는 유라시아 대륙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당시로서는 가장 다양한 생물상을 가진 비옥한 초생달 지대라고 부르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첫 농업혁명이 시작되었다.
다음으로는 기술의 확산과 이동이 유리해야 한다. 그것은 대륙축에 좌우되는데 남북축을 가진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는 긴 위도상의 차이와 지형적 특성 때문에 기술의 확산이 어려웠다. 이것이 같은 기후대를 가지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문명이 쉽게 전파되고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다.
또 하나 면적과 인구 규모가 있다. 인구가 많을 수록 경쟁도 잦고 신기술이 만들어질 확률도 높다. 그런 점에서도 유라시아 대륙이 가장 유리하다.
결국 유라시아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이유는 대륙이 가진 그런 장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아프리카 흑인들이 처음부터 유라시아 대륙에 살았다면 그들이 문명을 발생시키고 지배 인종으로 되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문명 충돌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1532년 11월 16일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와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가 페루 카하마르카에서 마주친 사건을 든다. 고작 168명의 스페인 군대를 거느린 피사로는 8만 명의 호위병을 거느린 잉카 황제를 체포하고 결국 잉카 제국을 멸망시켰다. 지금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날 62명의 기병과 106명의 스페인 보병에 의해 죽은 잉카인이 무려 만 명 가까이나 되고 나머지는 도망쳐 버렸다. 스페인 군인은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다. 그 이유가 바로 이 책의 제목대로 스페인 군대는 총(Guns), 균(Germs), 쇠(Steel)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기술의 우위가 정복과 피정복의 운명으로 갈랐다.
이 책을 읽으며 새로이 알게 된 것이 유럽인이 아메리카를 점령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결핵, 천연두, 페스트 같은 병균이라는 것이다. 이런 균들은 야생 동물들을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을 숙주로 하여 진화된 것인데 유럽인들은 내성이 생겼지만 그렇지 못한 신대륙의 인디언들은 유럽인들에 의해 전해진 이런 병균들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어느 인디언 종족은 전염병으로 인해 90% 가까이 사망하는 등 유럽인들이 오기도 전에 먼저 병으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잉카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의 결론이 너무 간명하고 단순해서 도리어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역사란 지리적 환경 뿐만 아니라 문화적, 인종적 특이성이 상호 작용하여 진행되는 것인데 과연 지리적 결정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결국 선사시대로부터 환경적으로 유리한 지역에 살게 된 우연이 오늘날 문명의 우열을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또 하나 느낀 것은 인간종의 정복과 팽창 욕구와 그에 따른 잔인함이다. 인간 역사를 훑어볼 때 그것은 유전자에 내재된 본능적인 욕구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새로운 건설은 반드시 파괴와 대량 살육을 수반한다. 현대 문명 또한 예외가 아니다.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그런 잔인성과 종의 이기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는 나에게는 암담해 보인다. 이 책의 논리를 연장시켜 앞으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도 함께 제시해 주었더라면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에 대한 저자의 견해도 듣고 싶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질문 하나 - 추장 사회로부터 국가까지 모든 계층 사회에서 평민들은 어째서 자신들이 수고하여 얻은 노동의 열매를 도둑 정치가들에게 빼앗기면서도 그냥 참고 있을까?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도둑 정치는 항상 정복당할 위험을 안고 있는데, 어떤 때는 짓밟힌 평민들이 들고 일어나 체제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억압과 회유로 도둑 정치가들은 자신의 지배 권력을 더욱 강화한다.
지배자가 평민들보다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방법에는 다음의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대중을 무장 해제하고 엘리트 계급을 무장시킨다.
둘째, 거둬들인 공물을 대중이 좋아하는 일에 많이 사용하여 재분배함으로써 대중을 기쁘게 한다.
셋째, 무력을 독점하여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폭력을 억제함으로써 대중의 행복을 도모한다. 이것이 중앙집권적인 사회가 그렇지 못한 사회에 대하여 갖고 있는 가장 큰 이점이라 할 수 있다.
넷째, 도둑 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이용한다. 원시사회의 초자연적 신앙이 중앙집권적 권위체나 부의 이동을 정당화하며 제도화 할 때 종교 조직으로 발전한다. 제도화한 종교는 도둑 정치가들에게 부가 이동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 말고도 중앙집권적 사회에 두 가지 이득을 준다. 하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공유하고 있으면 서로 무관한 개인들이 서로 죽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된다. 친인척 관계가 아니더라도 유대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는 사람들에게 유전적인 이기심을 떠나서 타인을 위해 목숨까지 희생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사회 구성원이 싸움터에서 국가를 위해 죽음으로써 전체 사회는 훨씬 더 효과적으로 다른 사회를 물리치거나 정복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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