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CQN에서 ‘디어 평양’을 보았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재일동포 양영희 감독은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15살에 제주도를 떠나 일본에 정착, 해방을 맞은 후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한 열렬한 조총련 간부였다. 결혼 후 부부는 함께 열정적인 정치 활동을 편다. 자식은 넷을 두었는데 10대의 오빠 셋은 아버지의 신념에 따라 북한으로 보내지고, 남은 딸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는 딸에게 서운해 하며 부녀간의 소원함으로 이어진다. 그때는 아버지와의 대화는 고사하고 밥상에 마주앉는 것도 싫었다고 한다. 후에 딸은 북한을 오가며 오빠들과 그 가족들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도 화해하고 아버지의 신념과 결단을 이해하게 된다. ‘디어 평양’은 사적인 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 가정을 통해 민족의 애환과 아픈 역사를 담고 있어 감동을 준다.
이 영화는 이념이란 무엇이고 혁명이란 무엇인지를 자꾸만 질문하게 만든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이념이나 신념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이념이 교조화 되고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 유일사상이 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그런 정치 지도자들이 만든 대표적인 나라가 북한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감독이 오빠들이 살고 있는 그곳을 따스하게 바라보려고 하지만 회의적인 느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오빠들의 무표정한 얼굴, 전체주의적 사회, 일본에서 물자를 보내줘야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궁핍은 아무리 지상낙원을 외쳐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몰락해가는 하나의 신념에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친 인간의 모습은 안타깝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간의 이념이나 생각의 차이로 생긴 어떤 반목이라도 서로의 진심이 통하게 되면 허물어지게 된다는 진실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이념보다 우선되는 것은 정이며 사랑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병든 아버지가 딸과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우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그 장면 속에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팸플릿에는 다음과 같은 감독의 말이 적혀 있다.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신념을 따를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의 갈등은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우리 가족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하면서 나의 이런 마음도 변해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머리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삶이 가슴으로 다가오고, 미움을 그리움으로 바뀌었으며, 갈등은 사랑으로 변해갔죠. 카메라 앞에서는 아버지도 마음을 열었습니다. 오빠들을 북한으로 보낸 것이 후회되느냐는 나의 질문에도 진솔한 답을 해주셨죠. 난 앞으로 아버지와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기뻤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늙은 아버지의 모습이 내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변동기에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다. 비록 꽃 피우지 못한 신념이었지만 오직 한 길로 자신의 인생을 살았던 아버지를 불행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리어 순수를 지향하는 삶을 산 한 인간의 위대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늙고 병든 아버지의 모습은 무력하고 초라하지만 가족간의 화해와 사랑의 마음이 영원과 연결시켜 준다. 그것은 완고한 이념이 결코 선물하지 못하는 것이다. 감독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땅, 평양이지만 거기에 사랑하는 가족이 살고 있기에 그녀에게는 ‘디어 평양’이 되는 것이다.
옆 자리에 앉은 아내는 낮 동안의 일이 피곤한지 자꾸 깜박깜박 존다. 아내의 나이 들고 약해진 모습에 마음이 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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