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는 ‘메트로갤러리’라는 전시장이 있어 오가며 공짜 구경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방된 전시장이다보니 대체로 아마추어들의 작품이 전시되는데 유명 전시회에서 느낄 수 없는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어 좋다.
이번에는 한국민족서예인협회에서 ‘먹빛 통해 내 마음터 찾아가는 체험전’이 열렸다. 장애인들이 서예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장애시설을 찾아가서 붓글씨를 체험하게 하고, 처음 붓을 잡아본 아이들의 삐뚤삐뚤한 솜씨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어설픈 그림과 글씨들이 왠지 미소를 짓게 하고 감동을 준다. 도리어 나에게는 추사의 글씨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그런 작품들 중에서 ‘쉬운 하루’라는 이 글씨에 시선이 끌렸다.
보통 ‘보람찬 하루’ ‘좋은 하루’라는 진부한 말들이 많지만, ‘쉬운 하루’라는 이 표현이 신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무슨 장애인지는 모르지만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 이 아이의 아픔이 느껴져 마음이 짠해졌다. 보통 아이들처럼 쉽고 정상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것이리라.
‘쉬운 하루’는 또한 나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스스로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며 괜히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내 자신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짐은 누가 강요해서 지운 것이 아니다. 대부분 자신의 마음이 지어낸 무게에 눌려서 허덕대고 있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쓸데없는 욕심과 환상으로 인해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과 옆 사람들을 들볶으며 힘들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충분히 쉽게 살 수 있는데 말이다.
물론 쉽게 산다는 말이 생각 없이 시류에 따라 되는대로 산다는 뜻은 아니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뇌는 필요하다. 그러나 진지하더라도 쉽고 가볍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삶의 고수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아무리 좋은 생각도 그것이 자신의 삶에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삶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저 푸른 하늘과 반짝이는 별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예수님의 이 말씀 또한 삶의 무게에 짓눌린 우리들에게 ‘쉬운 하루’를 살라고 하는 메시지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