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화두 중 하나가 ‘행복’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제 얼마큼은 빈곤에서 벗어나고 먹고살만해지니까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도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 며칠 전에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욕심 많은 사람들의 물질 추구를 통해 느끼는 만족도 행복의 범주에 들 수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 동료들은 그것도 행복이라 할 수 있다고 했고, 나는 계속 갈증을 느끼게 되는 그런 심적 상태는 행복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행복이란 기본적으로 존재론적인 깨달음과 연관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읽었다. 요즈음 쏟아져 나오는 행복을 주제로 하는 책 중의 하나로 내용도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이 시대가 살기가 얼마나 팍팍한지, 또 사람들이 행복을 얼마나 갈구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행복이란 행복해지려는 기술이 부족해서도 행복에 관한 지식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행복이란 마음과 존재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도리어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행복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역설을 이 책도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하여 제시된 주요 목차만 보면 대략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1. 내 인생은 내가 지휘한다.
2. 먼저 자신을 사랑한다.
3.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4. 자신에게 붙어 있는 꼬리표를 뗀다.
5. 자책도 걱정도 없다.
6. 미지의 세계를 즐긴다.
7. 의무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8. 정의의 덫을 피한다.
9. 결코 뒤로 미루지 않는다.
10.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11. 화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의 모습을 기술하고 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존재하고 또 나도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뻤다.
‘오류지대 행위를 하나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 존재한다. 대다수 사람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면서 순간순간을 창의적으로 생기 있게 살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무엇보다 확연한 것은, 그들은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해도 즐거워하며, 불평하거나 이미 지난 일에 매달리거나 허송세월하지 않는다. 그들은 열의에 차있으며, 삶에서 최선의 것을 구하려 애쓴다. 그들은 나들이, 영화, 책, 스포츠, 콘서트, 도시, 농촌, 동물, 산 등 거의 모든 것을 즐긴다. 그들은 삶에 애정을 갖고 있다.
불행하거나 하소연하는 일, 심지어는 기운 없이 한숨 짓는 일도 없다. 비가 오든 푹푹 찌든 결코 투덜대는 법이 없이 즐긴다. 차들로 앞뒤 꽉꽉 막힌 도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든 혼자 있든,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 있는 그대로 대처한다. 상황을 분별력 있게 받아들이고 현실에서 기쁨을 찾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뿐이다. 그들은 비가 온다고 곧장 그 비를 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 비를 아름답고 가슴 떨리고 체험해 보고 싶은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을 비를 좋아한다. 길이 질퍽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 지켜보다가 질퍽거려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살아있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다.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색다르고 낯선 경험을 찾아 나선다. 그들은 애매모호함을 사랑한다. 현재가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이라고 생각하면서 늘 현재를 음미한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갖가지 즐거움을 얻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만일의 경우에는 대비하지만 뒤로 미루는 사람이 아니며, 자신의 행동이 사회에서 질책을 받을 경우에도 자신을 책망하면서 주눅이 들지 않는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립적이다. 그들이 둥지를 틀었던 곳도 아늑한 가정이었고, 가정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나 헌신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관계에서나 의존보다 자립을 훨씬 높게 평가한다. 그들의 관계는 각자 자신을 위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를 서로 존중해 주는 가운데 세워진다. 사랑을 담보로 상대방에게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생활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자칫 그들에게서 냉대 받았다거나 퇴짜 맞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들은 때로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자신의 개인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사람들은 연애도 요란스레 하는 법이 없다. 사랑하는 상대를 고를 때에도 꽤나 가리는 편이지만 매우 섬세할 정도로 다정다감하기도 하다. 그러나 의존적이거나 현명하지 않은 사람이 그런 사람을 사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유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양보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함께 어울리고 싶어 하지만, 자신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거나 기대지 않는 사람이기를 한층 더 바란다. 그들은 연애를 하면서 스스로도 의존적이길 거부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에게 기대는 것 역시 원치 않는다.
그들은 퉁명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편이다. 비위를 맞추기 위해 세심하게 포장된 표현을 쓰지 않는다. 누군가 그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흠을 잡는다 해도 그들은 그 말에 무너져 내리거나 매몰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 말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가치관을 통해 여과시킨 다음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인정해줬으면 하고 터무니없는 바람도 품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들은 외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운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들은 불합리하고 소소한 규칙들을 무시한다. 상당수 사람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자잘한 관습도 짐짓 못 본 체한다. 그들은 그저 예를 차리기 위해 떠들썩한 모임에 참석하거나 잡담에 끼어들지도 않는다. 자기가 자기 자신의 기준이며, 사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사회의 통제를 받거나 예속되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사회에 반기를 들고 나서지는 않지만, 명쾌하고 합리적으로 무시해야 할 때와 본분에 충실해야 할 때를 스스로 판단한다.
그들은 웃는 법, 웃음을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 유머를 찾으며 아주 어처구니없는 상황, 매우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도 웃어넘길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기를 즐기며 편안하게 웃음을 자아낸다.
그들은 앞뒤 맞지 않는 일도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비아냥거리며 웃는 법도 없다. 결코 다른 사람에 대해 입방아를 찧어가며 웃음을 자아내지 않는다.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웃는다.
삶에 대한 태도는 진중하지만 삶에 대해 웃음을 보낼 줄 알며 모든 것을 즐겁게 바라본다. 그들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인생을 관망하며, 인생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함께 즐길 줄 안다. 그들은 함께 하면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불평 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과 인간이기 때문에 지니는 저마다의 인간적인 특질을 알고 있다. 자신의 외모가 어떤 식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키가 커도 괜찮고, 키가 작아도 상관없다. 대머리라면 어떻고 숱이 너무 많으면 또 어떠랴. 그들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간과 관련된 것은 어떤 것에도 상처받지 않는다.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없다. 청결이나 정돈에 대한 결벽증도 없다. 그들은 쓸모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며 모든 일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게 뭐 대수냐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조직이란 목적 자체가 아닌 유용한 수단일 뿐이다. 조직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창의적이다. 그들은 수프를 만드는 일이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든, 잔디를 깎는 일이든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정해진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호기심이 왕성하다. 그 호기심은 채워질 줄을 모른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인생의 한 순간 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혹여 잘 되지 않거나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한다 해도 곱씹어 한탄하지 않고 미련 없이 체념한다. 그들은 계속 배운다는 점에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다. 항상 더 많이 배우는 일에 열심이고 자신이 완성품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들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다. 아무리 배워도 부족하게 느끼며, 남을 깔보거나 젠체할 줄도 모른다. 어떤 사람, 상황, 사건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이 행복한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기 변명을 하지 않는다. 잔머리를 굴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도 애쓰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기 위해 옷을 입지도 않는다. 자신을 해명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꾸밈없고 자연스러우며, 일이 크든 작든 간에 문제 삼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논쟁을 일삼거나 토론을 하면서 조급증을 내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는 것이 부질없는 시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좋아, 우리는 생각이 다를 뿐이야. 의견이 꼭 같으란 법은 없지.”라고 말한다. 논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할 필요도, 상대방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상대방에 나쁜 인상을 남기는 것에 개의치 않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툭하면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도 아니다. 어떤 사람이 더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면 잘 됐다고 생각하지, 배 아파하지 않는다. 어떤 이와 경쟁하게 되었을 때 상대방이 선전하기를 바라지, 어떻게든 이겨보겠다고 그 사람이 실수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재능을 타고났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내부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들은 이런저런 평을 늘어놓는 사람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불행을 고소해하지도 않는다. 사실 그들은 너무 바빠 주위 사람들이 뭘 하는지 주목할 여유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에 자극받으며, 갈림길에 섰을 때 항상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편을 택한다. 그들은 자기 연민이나 자기 부정, 자기 혐오에 빠질 틈도 없다. 그들은 진정 ‘난 사람’들이다. 하루하루가 기쁨이다. 그들은 현재의 한순간 한순간을 알차게 음미하며 산다. 힘든 일이나 고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문제 때문에 감정의 늪에 빠지지는 않는다. 그들의 정신 건강을 가늠하는 잣대는 그들이 실수를 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실수할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이다. 그들이 인생의 궂은 날을 만났을 때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드냐고 징징거리고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일어서서 몸을 툭툭 털고 다시 기운을 차리고는 일과를 계속한다. 오류지대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무지개를 따라다니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보상으로 행복을 얻을 뿐이다.
현재의 한순간 한순간을 최대한 알차게 살라. 그러면 우리는 주변인이 아닌 행복한 이기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류지대에서 벗어났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지금 당장 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