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현의 노래, 칼의 노래

샌. 2007. 6. 12. 09:59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와 '칼의 노래'를 읽었다. 미려한 문체로 소문난김훈의 글을 그동안은접하지를 못했는데, 이는 김훈에 대한 선입견도 한 원인이었다. 그분의 인터뷰를 기사나 TV로 보았을 때 지나치다 싶은 솔직성과 현실주의가 왠지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해석하는 그분의 견해가 옳다고 느껴지는 일면이 있지만 나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두 소설을 읽어보면서 김훈 특유의 글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바탕에 깔린 사상이랄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도공감되는 바가 많았다. 그것을 어떤 사람은 탐미적 허무주의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삶의 비극이랄까 눈물겨움 같은 것,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애상이 두 편의 소설에 공통적으로 녹아 있었다.낭만과 서정의 포장을 걷어내고 알몸으로 드러나는 세상의 실상은 김훈이 바라보는 시각과 비숫하리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칼의 노래'를 더 많이 본 것 같은데, 나 개인적으로는 '현의 노래'가 더 좋았다. 그것은 세상의 무의미와 절망, 개인에게 지워진 역사의 무게가 '현의 노래'에서 더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현의 노래'는 주인공 우륵을 중심으로 얘기가 엮어져 나가지만 다른 등장인물들도 사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나는 지밀시녀 아라의 일생에서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희생되는 안타까운 인간의 모습을 본다. 그것이 가야 말기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된 운명이었다. 그것은 지금의 우리또한 예외가 아니다. 소설은 그런 인물들과 묘사들로 가득하다. 거기에 김훈의 독특한 문체가 더해져 감동을 주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슬프고 눈물 나는 일에 분명하다. 김훈이 말한 대로, 이 세계가 인간에게 가하는 모멸과 치욕은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밥을 먹고 숨을 쉰다는 것은, 이가 갈리는 일이지만, 협잡의 산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온 몸으로 감당하며 살아간 한 사나이를 '칼의 노래'에서 그렸다. 그는 희망 없는 세계에서 희망을 말하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이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아마 그 사나이야말로 김훈이 말하고 싶은 영웅이었을 것이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슬프고 눈물 나는 일이지만 결코 좌절하거나 무너져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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