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평창 백운산과 육백마지기

샌. 2007. 6. 11. 14:41



직장 동료들과 같이 강원도 평창의 백운산과 육백마지기를 다녀왔다. 원래는 1박2일로 하여 다양한 코스로 계획되었으나 갑자기 당일 여정으로 변경되는 바람에 둘로 축소되었다.


백운산(白雲山, 882m)은 평창군 미탄면에 있는 산이다. 특히 동강이 이 산을 휘감아 돌기 때문에 더욱 유명한데, 동강의 풍경 중에서 이곳 백운산 지역이 가장 수려함을 자랑한다. 문희(文希)마을에서 등산을 시작했을 때는 잔뜩 흐린 날씨에 보슬비가 살짝 내렸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급경사로를 택한 탓인지 오르기에 무척 힘이 들었다. 가벼운 트레킹 정도로 생각하고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결코 만만치 않은 산이었다.


백운산 정상에서는 동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완전히 열려있지 못하지만 S자의 곡류와 산이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다. 정상에서 칠족령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의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데 왼쪽은 동강이 흐르는 천애 절벽이다. 마치 칼로 두부를 자른 듯 수백 미터의 수직 절벽이 보여주는 자연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산길은 바로 이 절벽 끝을 따라 나 있다. 그러므로 이 길은 산과 강을 동시에 즐기는 멋진 길이다.

 



여기는 석회암 지대다. 퇴적암 지층들인데 심한 지각 변동을 받은 흔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백운산 정상에서 칠족령으로 내려가는 길에 노출된 암석들은 전부 경사진 층리가 나타나 있다. 강물이 바위를 침식하면 위쪽 암석들이 결을 따라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이런 거대한 절벽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동강을 굽어보는 경치 중에서는 칠족령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가장 좋다. 아마 한국의 대표적인 절경지대 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곳에 선 순간 눈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에 그동안 허기지고 지쳤던 몸과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운 좋게도 소풍 나온 어느 가족을 만나서 그분들로부터 김밥과 소주까지 대접받았다.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에 참으로 인정 많으신 분들이셨다. 산을 내려와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소주가 한없이 들어갔다.

 




그런데 동강의 물은 멀리서 보아도 옛날의 맑은 물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물색깔이 푸르지 못하고 희뿌연 기미가 들어있는 탁한 색이다. 동강이 이렇게 죽어가는 것은 상류에 있는 도암댐이 그 주범이라고 한다. 10여 년 전 동강댐 건설 계획으로 동강이 절단 날 뻔했다가 겨우 살아났는데, 이젠 도암댐의 수질 관리 잘못으로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긴 것이다. 도암댐은 1990년에 완공된 발전 전용 댐인데 지금은 전력 생산도 중단되고 방치되고 있다.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썩은 도암댐 물이 그대로 방류되어 민물고기나 다슬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래서 도암댐 해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을 접할 때마다 장자에 나오는 우화가 생각난다. 인간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자연을 손보다가 결국을 자연을 망치고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문희마을로 들어가는 길도 차량 통행을 위해 확장한 것이 강과 강이 포함된 문화를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20년 전부터 이곳을 꾸준히 찾았다는 C는 그런 서정성의 파괴를 제일 마음 아파했다. 물론 오지가 늘 오지로만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은 그 지역 주민에게는 잔인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개발과 자본의 물결 앞에서 순식간에 망가지는 모습을 무력하게 쳐다봐는 국외자의 마음은 너무나 슬프다.


저녁 무렵에 육백마지기를 찾았다. 육백마지지는 해발 1200여m 청옥산 정상부에 있는 너른 들판이다. 높은 산꼭대기인데 정상부는 완만한 경사지대로 넓은 고랭지 채소밭이 조성되어 있다. 육백마지기라는 이름도 그만큼 넓다는 뜻일 것이다. 보통 산꼭대기와 전혀 다른 이곳에 서면 이색적인 풍경에 압도당하게 된다.

 



그 중에서 내 시선을 제일 끈 것은 멀리 겹쳐져서 보이는 산 능선들이었다. 그 모습에 홀려서 다른 것은 바라볼 여유도 갖지 못했다. 여름인데도 정상의 바람은 겨울의 칼바람 같았다. 온몸이 오그라드는 냉기에 사진 몇 컷을 찍고는 히터를 튼 차 안으로 도망쳐야 했다. 해는 저물고 바람은 차서 둘레를 산책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여기는 다음에 여유를 갖고 다시 한 번 찾고 싶다. 사진에서 제일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이 1400m 급의 백덕산이라고 옆에서 가르쳐 주었다.

 



1200m 산꼭대기에 올라와 있는 굴삭기가 묘한 느낌을 주었다. 이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굴삭기가 들어가는 곳마다 길이 생기고 건물이 생기고, 그리고 반드시 오염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인간은 무언가의 이윤을 얻기 위해 자연을 변형시키지만 그러나 뒤에는 몇 곱절의 반대급부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육백마지기까지 올라온 것도 내가 비난하는 이런 개발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도로 건설을 욕하면서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그 길을 이용한다. 그런 것이 우리 삶의 모순이면 모순이고,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남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자신도 거기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문명혐오론자가 되어 차를 버리고 아스팔트길도 밟지 않을 수는 없다. 생각과 행동 사이의 중용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붕붕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서 머리 속은 자꾸만 복잡해져 갔다.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심길을 쓸쓸히 걷다  (0) 2007.06.16
향린에서 도올 강의를 듣다  (0) 2007.06.16
고대산에 오르다  (0) 2007.06.07
북악산 성곽길을 걷다  (0) 2007.06.02
도솔산 가는 길  (0) 2007.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