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고대산에 오르다

샌. 2007. 6. 7. 12:04



고대산으로 가는 길은 멀다. 집에서전철을 1시간 30분 타고 가, 동두천에서 경원선 열차로 갈아타고 다시 50분을 가야 신탄리역에 도착한다. 경원선은 예전에 금강산으로 가는 철로로 지금은 열차가 신탄리역까지밖에 가지 못한다. 신탄리역도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종착역이다.

 

고대산(高臺山, 832m)은 경기도 연천에 있는 산으로 군사분계선과 이웃하고 있다. 정상에 서면 북녘 땅이 가까이 바라보인다. 골이 깊고 경사가 급해 산을 오르기에 만만치 않다. 그러나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탁 트인 시야가 아주 좋다. 이번에 K 형과 둘이서 고대산을 찾았다. K 형은 가끔 열차를 타는 재미로 고대산을 찾는다고 하는데, 나는 고대산이 초행길이었다.

 

봄꽃이 가고 아직 여름꽃이 나오지 않은 지금은 꽃이 드문 철이다. 풀꽃은 대여섯 종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대신에 K 형으로부터 나무 공부는 많이 했다. 부끄러웠던 것은 철쭉 조차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꽃이 지고난 뒤에 나뭇잎만으로는 철쭉도 구분해내지 못했다.

 



신탄리행 열차. 한 시간마다 한 번씩 동두천역에서 출발한다. 마지막으로 기차를 탄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에 없을 정도로 정말 오랜만에 기차를 타보았다. 열차 안은 고대산으로 가는 등산객들로 가득 찼다.

 



정상 부근에서 만난 노랑제비꽃. 노랑제비꽃은 이렇게 높은 산 꼭대기에서만 자란다.

 



팥배나무 잎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나비. '이름 모를'이라는 말은 가능하면 안 쓰려고 하지만 나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니 어쩔 수가 없다. 카메라를 가까이 갖다대도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숲의 군계일학인 층층나무. 층층나무의 흰꽃은 지금 한창이다. 미끈하게 뻗은 줄기며 나무의 생김새가 귀족의 품위를 느끼게 한다.

 



정상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으로의 조망.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시야가 열려 있었다. 북쪽 방향으로는 우리쪽 초소와 그 너머로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이번 산행의 가장 큰 수확은 이 개회나무와 만난 것이었다. 산 정상 바로 뒤쪽으로 돌아갔다가 K 형이 우연히 이 나무를 발견했다. 꽃개회나무인지 털개회나무인지 구체적으로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진한 향기를 뿜으며 보라빛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우리나라 특산종인 이 나무는 서양으로 건너가서 원예종으로 개발되어 다시 전세계로 보급된 나무이다. 그 아픈 사연을알고 있었지만 산에서 직접 나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나라 토종 라일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역시 정산 부근의 양지 바른 곳에 피어있던 씀바귀. 좋은 공기만 마셔선지 꽃 색깔이 선명하고 힘찼다.

 



하산길에 길 옆에서 본 천남성. K 형은이 꽃을 설명할 때면 늘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며 웃는다. '첫남성'이라는 발음과 비슷해서 그렇다나 어떻다나.

 



수수꽃다리로 보이는 나무도 만났다. 우리 수수꽃다리와 외국에서 들어온 라일락을 지금은 거의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산에서 야생 상태로 자라는 이 나무는 우리 수수꽃다리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코를 찌르는 특유의 향기가 아주 진했다.

 



고대산 계곡에는 이런 멋진 폭포도 있다. 이름이 표범폭포라고 적혀 있는데 한여름에 물이 쏟아질 때는 장관을 이룰 것 같다.

 



잎이 하얀 색깔로 변해 있는 이 나무가 궁금했었다. 마치 누군가가 흰 페인트로 칠한 듯 줄기 끝에 있는 나뭇잎만 이렇게 하얗게 변색되어 있다. K 형이 개다래나무라고 알려 주었다. 왜 그렇게 색깔이 변하는 것인지 알아맞춰 보라는데 내 궁리로는 도무지 헤아리지 못하겠다.

 



산을 다 내려오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국수나무다. 이 나무를 만나면 인가가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나무도 그들 나름대로 자라는 장소가 있다.


 

그저 가벼운 산행 정도로 출발했는데 예상 외로 좋은 나무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식물을 전공한 사람과 동행하니 그저 스쳐지나갔던 것들이 이름을 가지고 정답게 다가왔다. 알게 되면 관심을 가지고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의 대상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풀과 나무와의 교유가 가장 큰 기쁨이다. 그들의 정직성, 단순함, 그리고 무심(無心)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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