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 섬과 모아이라고 불리는 석상에 대해 알게 된 것은 30년 쯤 전에 데니켄이 쓴 책을 통해서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책은 ‘신들의 수레바퀴’라는 제목으로 을유문고 중의 하나였다. 그 책에서 데니켄은 여러 고대의 수수께끼 유적들을 외계인이 방문한 증거로 제시하고 있었다. 이스터 섬의 석상도 그는 외계인이 만든 것으로 설명했다. 그래서 한동안 그의 생각에 매료되어 외계인의 존재와 그들이 남긴 흔적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를 해 보기도 했다.
이스터 섬은 태평양 상에 고립되어 있던 섬으로 1722년에 유럽인에 의해 발견되었고, 해안가를 따라 서있는 신비한 석상들로 인하여 유명해졌다. 총 800여 개에 이르는 석상들은 평균 키가 4 m에 이르고, 무게도 14 t이나 된다. 어떤 것은 150 t이나 될 정도로 크다. 원주민들이 돌이 나는 먼 산에서 석상을 만들어 해안가로 날라 세운 것이다. 석상들이 어떤 과정으로 건립되었는지는 대략 밝혀졌으나, 왜 이스터 섬의 문명이 몰락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는 무분별한 환경 파괴가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나오는 것 같다. 당시 이스터 섬에는 여러 부족들이 살고 있었고, 무슨 일인지 서로가 석상 건립에 사활을 걸다시피 경쟁을 했다. 아마 무척 종교적인 사회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거대 석상을 제작하고 옮기는데 막대한 인력과 목재가 필요했을 것이고 대규모 삼림 벌채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좁은 섬의 생태계는 파괴되었고, 결국 불모화된 자연 속에서 사람이 사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먹을 것이 없어지니 인구는 급속히 감소하고 나중에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절망적인 상황까지 다다랐다. 그들이 왜 석상 건립을 멈추지 않았는지는 수수께끼지만 그리고 다른 절박한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하여튼 그들은 삶의 관성, 즉 석상 건립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그 무엇 때문에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스터 섬의 붕괴 과정이 주목받는 것은 지구상에서 인류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크기의 차이가 있지만 섬이나 지구나 한정된 폐쇄 생태계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스터 섬의 사람들이 석상 건립에 몰두하며 무차별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했듯이 현대 문명 역시 자체의 진행 동력에 의해 비슷한 외길을 걸어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집단 자살 프로그램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이 석유문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쉼 없이 강조되는 것이 성장과 번영이라는 것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지금의 후진국들이 조만간 선진국의 소비 패턴을 닮아 따라하게 된다면 지구 자원이 금방 바닥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환경 파괴와 오염으로 인해 지구는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물론 아직도 우리가 방향을 선회해서 새 길을 찾을 여지는 남아 있지만 세계의 주된 흐름이 절망의 끝 쪽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어서 안타깝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우리 또한 이스터 섬의 전철을 밟을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도 우파의 사르코지와 좌파의 루아얄 사이에서는 이념 대결이 펼쳐졌다. 그들이 내건 표어가 재미있었는데 사르코지는 ‘더 많이 일해서 돈 더 많이 벌자’였고, 루아얄은 ‘공정한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였다. 나 자신은 은근히 루아얄을 응원했건만 프랑스 국민들은 결국 사르코지를 선택했다. 지금처럼 국가간의 치열한 경쟁시대에 사르코지의 정책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런 프랑스 국민들의 고민은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고민에 다름 아니다. 쿠바나 베네수엘라 같은 몇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향할 길은 이미 답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그것은 개발과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며 새로운 부의 창출이다. 문화의 나라, 공정한 사회, 공생과 가난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는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과거 이스터에서 일어났던 일은 지금 우리의 상황과 닮아 있다. 경쟁과 갈등, 파멸을 향한 맹목적이고 무의미한 집착, 환경 파괴 등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질적인 내용은 거의 같다. 이스터 사람들이 석상 건립에 목을 매었듯이 우리 또한 맹목적으로 부와 번영을 쫓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은 모두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걸 두렵게 감지하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 무모하기만 한 대열에서 이탈하면 도태되는 게 우선 두렵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나서 더욱 극성을 부리는 브레이크 없는 자본주의의 질주가, 인간 군상들의 무한욕망이 나는 무섭다. 훗날 황폐화된 지구위에서 오늘의 맹목적인 줄달음이 어리석은 짓이었음을 깨닫는다한들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건조하고 무표정하기 그지없는 맘몬의 석상들은 지금껏 만들어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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