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망가지고 싶은 충동

샌. 2007. 6. 7. 18:37

소주 몇 잔 걸치고 나면 내 사는 모습을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좀 험하게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은 날 보고 외유내강형의 선비 스타일이라고 한다. 내 자신은 거기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비치는 내 모습은 대체로 그런 쪽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선비라는 것은 좋게 표현한 것이지 실제는 완고하고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나를 어려워 한다. 말수도 적고 붙임성도 없으니 부담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얼마 전 동료 P가 전날 코 빠지게 술 마신 얘기를 하며 "너도 이렇게 망가지고 싶지?"라며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본심이 탄로난 것 같아 아무 얘기도 하지 못했다. 동료는 세상 신고를 다 겪으며 사람 마음 꿰뚫어 보는 것이 나보다 한 수 위인데 그에게 대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사실이 그러했다. 어떨 때는 망가지고 싶을 정도로 일상에서 일탈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예쁜 여자를 만나 몰래 연애를 해 보고 싶기도 하고, 일확천금의 행운이 굴러들어와 원껏 돈도 써보고 호기를 부려 보고 싶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 업적을 남기고도 싶고, 내 혼자의 힘만으로 불의를 없애고 정의로운 세상을만드는 슈퍼맨이 되고 싶기도 하다. 아니, 그렇게 거창하게 나갈 것도 없이, 그냥 지금의 위선적인 탈을 벗어버리고 좀더 적나라하게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아한다고 말하고, 싫은 사람은 그냥 마음껏 미워하면서 말이다. 술 마실 때는 마음껏 취해서 실수도 했으면 싶고, 사람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내 식대로 한 번 살아보고싶다. P의 말대로 실컷 망가지고도 싶은 것이다.

그러나 알코올 기운이 가시면 나는 다시 태어난 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조심스럽게 예의를 차리고, 속마음과 달리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험한 자리는 일부러 가지를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호감 어린 시선에 만족하며 스스로의 정형화된 틀 안에 나를 가둔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선비라고 호칭하는데 거기에는 호오의 감정이 함께 들어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 심적인 갈등까지는 들여다 보지를 못한다. 가끔은 그런 고민을 내비치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여주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은 내 얼굴 표정만 보고 마음까지도 의례 그러한 줄로 착각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또 그만큼의 참살이의 꿈들이 있다. 어느 사람이든지 완벽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완벽을 지향할 수도 없다. 참살이라는 말 자체에도 실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산다는 것을 참되다, 그릇되다로 나누어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이 의미 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진정껏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이 성품대로의 삶이든, 아니면 망가지고 싶다는 욕구이든, 다른 어떤 희망사항이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사랑하고 근본에 감사하는 것 외에 다른 가치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박카스 신의 충동질도 고맙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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