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선생님이 사과하세요

샌. 2007. 7. 9. 13:32

옆 사무실에 갔더니 동료 S가 굉장히 낙담해 있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S의 수업시간 중에 한 아이가 너무 부산스러워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이는 자기는 잘못이 없다며 도리어 S에게 대들더라는 것이다. 복도에 나가 꿇어앉아 있으라고 해도 아이는 못 하겠다고 버텼다. 너무 화가 나 "이 새끼가" 하면서 나무랐더니 선생님이 욕을 했다면서 먼저 자신에게 사과하라고 덤비더라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 아이를 생활지도부에 넘기고 오는 길이라면서 언제부터 교실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느냐면서 한탄을 한다.

불행하게도 학교에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다. 학교 붕괴, 교실 붕괴라는 표현이 등장한지도 오래 되었다. 그런 표현이 걱정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즐길려고 만든 것인지헷갈릴 정도로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학생들은 천방지축으로 나대고, 뜻있는 교사들은 점점 의욕과 열정을 잃어가고 있다. 교육이 나라의 미래라고 너무나 쉽게 말은 하지만 정말 절실하고 진지하게 교육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학부모들도 내 자식만 잘 되기를 바라는 좁은 울타리 속에 갇혀 있을 뿐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90년대부터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 전분야에서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한번은 겪어야되는 과정이고 또 긍정적인 역할도 했다. 그러나 의도적이고 급작스런 변화는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고, 그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학교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현상들도 사회 전체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젠 교사가 존경받지 못하고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에게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사태가 속속 일어나는 슬픈 현실이 되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운 꼴이 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이런 얘기도 있다. 지난 스승의 날에 담임을 맡고 있는 내 앞자리 선생님이 자기 반 교실에 들어갔더니 한 아이가 이렇게 빈정대더란다. "What do you want? Money?" 농담일 망정 이런 말이 아이들 입에서 거리낌없이 나온다는 것은 우리의 심성이 얼마나 천박해졌는지를 말해 준다. 돈과 이기심에 어린 아이들까지 다 오염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슬픈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공부를 안 한다고 나무라면 옆의 아이들의 "쟤네는 돈이 많아요"라는 대답을 흔히 듣는다. 공부 안 해도 걱정없으니 선생님도 신경 끄라는 투다.

혁명이라도 일어나야지 이런 식으로 개판이 되어가서는 곧 말세가 될 거라는 얘기를 우리끼리는 가끔 한다. 그만큼 해결책은 없고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까지 온 것에 대해 어느 누구를 탓할 것인가. 지금도 신문 지상에는 쓰잘데기 없는내신 몇 프로 가지고 그것이 교육문제의 진실인 양 싸우고 있다. 한심한 노릇들이다. 기득권층의 제 밥그릇 챙기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교육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이래저래 우울하기만 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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