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호기심을 잃어가는 아이들

샌. 2007. 7. 12. 15:56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니 수업하기가 무척 어렵다. 특히 여름방학을 앞둔 시점이라 아이들의 마음은 마냥 흐트러져있어 평상시보다 아이들을 다잡는데 몇 배나 힘이 든다. 시험 점수의 압력이 없는 수업은 아이들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1학년 수업의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우주대기행’이라는 DVD를 보여주고 있다.


이 DVD는 일본 NHK에서 제작한 것으로 내용이 괜찮은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거의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진지하게 바라보는 아이는 한 반에서 고작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요사이 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가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온통 공부에 압박을 받으며 진을 다 쏟아서 그런지 성적이나 대학 진학과 관계되지 않은 것은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책읽기조차 아이들은 자유롭지 못해 그들의 독서 범위는 논술에 관계되는 것으로 한정된다. 자녀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대부분 가정의 목표는 오직 아이의 대학 진학에만 집중된다. 이러니 아이에게 공부 외에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요구하는 자체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대신 아이들은 자극적인 영상이나 전자오락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그런 세계에 갇혀 버린다. 그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사람들, 그리고 정치나 사회 부조리 등은 더구나 관심 밖이다. 세상이야 어찌 되든 말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가 어린 아이들의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다. 동시에 돈이면 다 된다는 배금주의에도 오염되어 있다. 아이들을 탓할 수가 없다. 세상과 어른이 그렇게 가르친 결과다.


또 아이들의 사고는 어리고 경박하며 즉물적이고 진지하지 못하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뇌를 지금의 청소년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란 세상으로부터 일정 거리 떨어져서 지식을 배우고 지혜를 닦아야하는 곳이건만, 지금의 학교는 오직 세상을 절대 추종할 의문 없는 로봇을 만드는 공간으로 전락되어 버렸다. 대학도 마찬가지고, 이러니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을 말하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비웃음 당하기 십상이다. 이렇게 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끌어갈 미래가 염려되는 것은 단지 나이 든 구세대의 기우만은 아니다.


주변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잃은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라는 감성이 없다면 죽은 청소년일 뿐이다. 그들의 모습은 좀비처럼 무섭다. 그러나 아이들을 탓할 수가 없다. 지금의 세상과 교육 현실이 영혼이 죽은 아이들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정교한 검은 손이 일부러 이런 교육제도를 유지 강화시키며 인간성을 말살하려 획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우매한 대중들은 그 검은 손의 조종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세상이 반생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데도 세상이 너무 조용한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먼 훗날 인간다운 세상이 열렸을 때 지금 이 시대는 아이들에 대한, 그리고 생명에 대한 학대의 시대로 평가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 역시 많았던 범죄자 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은 죄는 모르고 저지른 죄보다 더 중하게 단죄될 게 분명하다. 세상 수레바퀴의 들러리 역할을 해야만 하는 지금 내 처지가 그래서 한없이 불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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