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골프를 안 하는 이유

샌. 2007. 7. 16. 10:13

나름대로의 은둔생활을 정리하고 옛 친구들을 만나니 같이 골프를 하자는 권유를 들을 때가 있다. 골프야말로 늙어서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고, 같이 만나고 즐기는데 제일 좋은 운동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실 골프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있는 자들의 운동이라는 선입견에다가, 환경에 관심을 두면서부터는 골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더욱 커졌다. 그래도 친구들에게 내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못하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한다.

골프장을 생태적으로 '녹색 사막'이라고 부른다. 잔디 외에는 다른 어떤 생물이 사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초록 잔디가 보기는 좋으나 실은 가장 반자연적인 곳이다. 인공적인 것은 일반 경작지도 마찬가지지만 거기는 온갖 생물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터다. 그러나 골프장에서는자연의 생태적 균형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인위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농약이 살포되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골프장의 농약 사용 실태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으니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그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는 있다.

터에 들어가는 마을 윗쪽에 골프장이 있는데 언젠가 그 마을 주민을 차에 태워드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골프장에 대해 물어봤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셨다. 가구마다 보상금을 준다고 해서 골프장 건설을 허락해 주었는데 지금은 골프장에서 흘러내리는 농약 섞인 물로 지하수가 오염되어식수로 전혀 쓰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논의 쌀도 마음 먹고 먹지 못하겠단다.동료 중 한 명도 여주쌀은 절대 사먹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주군에 가장 골프장이 많은데 그런 쌀을 어떻게 먹겠느냐는 것이다. 지나친 건강 염려증인지 몰라도, 그로서는 충분히 일리있는 행동일 것이다.

제주도에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내려다 본 지상의 풍경에서 수도권에 유달리 골프장이 많이 보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버즘처럼 흉해 보였다. 우리나라는 지형 특성상 골프장이 대부분 산자락에 만들어진다. 나무를 베어내고 산을 깎아내야 하는 파괴 행위는 불가피하게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골프장에 의한 산지 훼손도 엄청날 것이다. 버려진 평지에 건설되는 외국 골프장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렇게 넓은 면적을 희생시켜 일부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운동시설로 이용되는 것이다. 운동 중에서 골프만큼 일인당 필요면적이 넓은 운동도 없을 것이다. 그 넓은 면적에 라운딩하는 고작 몇 사람만이 점처럼 박혀 있다. 한 팀이 지나가야 다음 팀이 들어올 수 있으니 면적 활용으로 치면 이렇게 비효율적인 운동도 없다.

그리고 골프는 아직까지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의 운동이다. 등산이나 달리기처럼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를 떠난 보편적인 운동이 아니다. 하고 싶어도 경제적 능력 때문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특수성과 희소성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운동을 하면왠지 마음이 불편해질 것 같다.그것도 쉽게 골프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나 역시 돈 때문에도 골프를 시작하지 못한다. 한 번 나가면 20만 원은 있어야 한다는데 그 정도 액수는 나에게는 한 달 용돈에 버금한다. 큰 마음 먹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즐길 수 있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골프를 친 뒤에 회식 자리라도 생기면 혼자 궁색을 떨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수준에서 놀아야 할 경제적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공무원 월급만으로 살아야 하는 살림살이에서 골프를 하는 것은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로서는 골프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친구에게 솔직히 털어놓지는 못한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가치관과 세계가 있으니 아직은 그들을 이해시킬 자신이 없다. 그들 쪽에서 보면 내 생각이 얄팍한 자존심에 고리타분한 편견이라고 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아직 골프에 대해서는 한 번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래 전에 수능 관계로 골프장 옆 숙소에서 한 달간 갇혀지낸 적이 있었다. 창문 밖으로 드넓고 아름다운 골프장이 펼쳐져 있었는데,그때도 내가 저 자리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상하게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숙소 안에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골프 연습장까지 마련되어 있었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전 직장에도 역시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연습장이 있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아직 내 의식 속에는 골프에 대한 저항감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나에게 골프를 권하던 친구들은 지금 중국에 골프 여행을 가 있다. 그들의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부럽지만 골프 치러 외국을 찾아나가는 모습은 아직 내 눈에는 껄끄럽게 보인다. 좀더 문화적이고 품위 있는 여행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 아마 이런 얘기를 그들에게 하면 "그래, 너 잘 났다."하며 빈정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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