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맑은 강의 추억

샌. 2007. 7. 26. 14:40

운 좋게도 올해는 두 차례나 동강을 가 볼 기회가 있었다. 두 번 다 동강의 수려한 경치에 넋을 앗겼는데, 지금도 영 기분이 찜찜한 것은 동강의 물이 너무나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맑고 청정한 강의 대명사였던 동강마저 이렇게 변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동강 주변에 사는 사람들 얘기로는 고기가 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심할 때는악취 때문에 강 가까이 가지도 못한다고 한다. 동강댐을 만드느냐 마느냐로 돈바람의 회오리가 휘몰아치더니 기어코 강물까지 죽이고 말았다.

우리나라 강 중에 지금껏 온전히 남아있는 강은 없을 것 같다. 인간 생활의 편리함과 안락을 차지한 대가로 우리는 공기와 땅과 물을 망쳐놓고 말았다. 이렇게 근본을 망가뜨려 놓고는 무슨 발전을 논하고, 인간다움을 논하는지 한심하기만 한 일이다. 이젠 전국 어디서나 땅에 구멍을 뚫고 지하수를 퍼올리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지하수마저 오염되거나 부족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어릴 때 고향 마을 앞으로 지나가는 맑고 깨끗했던 강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지천 중의 하나였는데 사투리로 그냥 '거랑'이라고 불렀다. 물은 깨끗해서 헤엄을 치다가 들이마셔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강변으로는 하얀 모래사장이 있었고, 여름이면 거기서 발가벗고 뒹굴며 놀았다. 고기도 엄청 많아서 심심하면 손으로도 잡아내곤 했다. 가만히 돌을 들면 돌 아래 한두 마리의 물고기는 꼭 숨어 있었다. 지금은 그 이름도 다 잊어버렸지만 '텅거리'라고 부른 투박하게 생긴 놈도 있었다. 다슬기도 많았고, 가재도 많았다.

그때는 고기 잡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낚시나 그물이 성이 차지 않은 사람들은 '싸이나'라고 불린 약을 풀었다.그러면 아래쪽 고기들은 하얀 배를 들어내고 물 위로 떠올랐다. 우리는 아래쪽에 있다가 사람들이 못 건지고 떠내려오는 고기만 모아도 한 바구니가 되었다.전기로 고기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뱀장어 같은 것은 이렇게 잡았던 것 같다. 심한 경우에는 수류탄 같은 것을 터뜨려 충격음으로 고기를 기절시켜 잡았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고기를 몰살시켜도 며칠이 지나면또 그만큼의 고기가 강에는 넘쳐났다. 그만큼 생태계의 복원력이 좋고 살아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사라졌다. 강둑은 시멘트로 덮였고, 물은 탁해졌다. 그 고왔던 모래사장은 없어지고 돌덩이들이 강을 차지했다. 고기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홍수라도 져야 '반도'를 들고 나가 겨우 몇 마리를 건지는 정도다. 이제는 물 속에 발을 담그려는 사람들 조차 없다. 아이들도 강가에 나가지 않는다. 죽은 강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당시 걸어서 30분 정도 가면 닿는 이모네 산골마을에서는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개울물을 그대로 식수로 이용했다. 물이 그만큼 깨끗했던 것이다. 이모네 집에 놀러갔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 그 개울가에서 세수를 했다. 그리고 그 물을 한 웅큼 마시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 개울물도 말라 버렸지만, 우리나라 어디서고 농약으로 오염되지 않은 자연수는 없을 것이다. 비나 눈도 마음 놓고 맞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물 좋고 산 좋다는 금수강산은 불과 백 년도 안 되는 사이에 황폐해져 버렸다.

이런 걸 보면 잘 살아야 된다,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회의를 느끼게 된다. 자연을 죽이고 사람 사이의 정을 무시하면서 소득이 몇 십만불이 된들인간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옛날보다 물질적으로는 훨씬 잘 살게 된 지금의 우리가 과연 우리 할아버지 대보다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능력과 경쟁을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 나만 잘 산다고 그게 행복일까?

가만히 눈을 감으면 철 없었던 어린 시절이 꿈결처럼 떠오른다. 여름이면 책보 던져놓고 해 질 때까지 첨벙대며 놀았던 그 맑고 깨끗했던 강, 고무신으로 기차놀이 하고, 귀에 물이 들어가면 뜨거운 돌을 귀에 대고 종종걸음도 쳤던 강, 하루 종일 놀아도 질리지 않던그때 고향의 강이 오늘 따라 더욱 그리워진다. 아무래도 우리는 쓸데없는 것을 얻느라 한 눈파는 사이에 제일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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