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교사는 안 돼요

샌. 2007. 6. 29. 09:58

요사이 총각들에게 신부감 1순위는 예쁜 여교사이고, 2순위는 보통 여교사, 3위는 못 생긴 여교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여교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교직이라는 긍정적 이미지와 안정된 직업이란 것이 남자들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 특히 남자 입장에서는 아내가안정된 수입을 보장받을 때 자신이 하는 일이나 가정의 안정성도 높아지니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리고 전체적인 교직에 대한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여학생 뿐만 아니라 남학생들도 교사를 희망하는 숫자가 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세상살이에 대한 불안정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현상들은 내가 처음 교직에 나왔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당시에 교사의 인기는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한참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절이라 인재들은 보수가 좋은 산업체로 몰렸다. "안 되면 선생이나 하지 뭐"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누구나 다른 쪽을 기웃거렸다. 어찌 보면 그때의 교사들은 능력 없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집단이었다. 보수는 박봉이었고, 근무 분위기도 독재정권의 하수인이라 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다. 물론 순수하게 교직에 뜻을 두어 열심히 생활했던 사람도 많았다. 지금도 옛날을 회상해 보면 남아있었던 그때의 사람들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따뜻했음을 기억한다.

당시 Y여중에 있을 때 30대 노총각 동료가 있었다. 장가를 가려고 어느 날은 결혼상담소를 찾아갔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여자 소개서를 골랐는데밑의 기타란에 '교사는 절대 안 돼요'라는 글귀를 보고 충격을 받은 얘기를 전해 주었다. 같은 입장이었던 나로서도 부아가 나는 일이었다. 그때교직은 처녀들에게 인기가 없는 직업이었다. 그것은 총각 선생들에게 중매 들어오는 대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때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은 일주일씩 새마을교육을 받았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는 등국가에 의한 체제 세뇌 교육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는 그런 사실을 심각하게 깨닫지 못했다. 새마을 연수원에 입소해서 일주일동안 낮에는 강의를 듣고 밤에는 분임토의를 하며 공산당식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교육의 주제와는 별 관계 없었지만 내가 소속된 분회에서 이런 총각 교사의 비애를 얘기했더니 다들 공감을 했고 전체 발표 때 얘기하라고 해서 강당의 연단에도 섰다. 교직 천대의 호소에 모두들박수로 호응해 주었다. 어떤 선생님은 후에 찾아와서 자신이 좋은 사람 중매해 주겠다고까지 약속했는데 그 뒤로 연락은 없었다.

이제 세상은 변해 교직에 대한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특히 여교사는 총각들에게 특순위 결혼상대자로 꼽히고 있다. 결혼을 못해 걱정하는 총각 교사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높아진 위상 탓인지 처녀 교사들의 숫자는 도리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젠 교사 되기도 어려워져 임용고사에 합격하기가 고시에 붙는 것 만큼이나 힘들어졌다. 우리 학교의 한 기간제 교사는 교사가 되고 싶어서 다니던 회사를 사표 내고 나왔다. 그리고 가족과 떨어져 원룸 생활을 하며임용고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쉽사리 합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이 교직의 지위 향상이나 나은 근무환경 탓이 아니라 사회 다른 직업들의 악화된 여건 탓에 상대적으로 교직의 장점이 드러나기 때문이어서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다. 작금의 교직 선호 현상이 그 내용보다는 많은 부분 안정적 직업과 여유있는 시간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실제 교사들의 근무 여건이나 아이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예전보다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계속 지속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교직에도 경쟁체제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교직이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업이라는 인식도 곧 사라질 것이다. 이미 행정공무원 쪽에서는 능력과 경쟁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있다. 능력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 능력의 기준이 무엇이고, 또 무엇을 위한 능력인지에 대해서는 나는 지금도 회의적이다. 특히 교직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교직의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그런 시대적 흐름을 외면할 수 없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도 새로운 시대가 되면 사람들은 또 거기에 맞추어 살아갈 것이다. 이제 "교사는 안 돼요"라는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은 잘 된 일이지만, 그러나 세상은 점점 차갑고 냉혹하게 변하는 듯하여 마음이편치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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