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재벌 회장의 서부 활극

샌. 2007. 5. 2. 09:57

한 재벌 회장의 서부 활극 같은 한밤의 복수극이 시중의 화제가 되고 있다.아들이 유흥가에서 술집 종업원들에게 폭행을 당하자 회장님이 손수 폭력배를 대동하고 찾아가 보복을 했다. 그리고 아들을 때린 범인을 잡는다고 야산으로 납치해 뒷골목 깡패들이나 할 폭력을 회장과 아들이 직접 가했다. 당사자들이야 부인하고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분명해 보인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나상류층의 의식 수준이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인간됨을 알게 된다면 실망과 절망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이번에 정확히 그걸 증명해준 셈이다. 대중들은 우상이나 영웅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거기에 열광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데 대부분이 환상에 불과하다. 그들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고 어쩌면 우리보다 좀더 현실적으로 똑똑하고 영악한 인간일 뿐이다.

나는 우리 상류층의 특징을 특권의식과 무절제, 몰염치로 표현하고 싶다. 물론 이번의 돌출 사건을 일반화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의 상류층에 깊이 배어있는 속물의식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우리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경험하자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을 보면서 재벌 회장의 심리 저변에 깔려 있는 특권의식에 대해서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회장님을 그렇게 화나게 한 것은 단지 아들이 폭행 당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인간 같지도 않은 술집 종업원들에게 폭행 당했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자신과 비슷한, 아니면 더 높은 계층의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졌다면 젊은이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너그럽게 이해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최소한 돈으로라도 타협했을 것이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때린 것이 마치 인도의 불가촉천민 같은 술집 종업원들이었으니까 회장님이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회장님에게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심한 모욕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가진 자들이 하는 행동들이란 다 그런 거지 뭐 하고 자조하며 비아냥거린다. 그리고 그들의 실상이 드러난 것에 대해 내심 고소해 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세상은 가진 자들을 중심으로, 가진 자들을 위해 돌아가고 있으니까.

경찰 수사도 짜고 치는 고스톱 식으로 재벌과 한 통속이라는 의구심을 절로 생기게 한다. 사건 접수 후 한 달 동안 쉬쉬하다가 외부 압력을 받고서야 수사하는 척 하는 시늉을 내고 있다. 경찰이나 검찰 같은 사법기관이 늘 가진 자의 편이었다는 불신이 이번 경우에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공정한 수사 지시도 공허하게만 들리는 게 지금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준 이번 활극 사건을 보며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사람들 표정은 시큰둥하다. 며칠 간 여론에 맞장구치듯 소란을 떨다가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핑계를 대며 흐지부지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소주집을 찾아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다 그렇지 뭐!'라며 자조 섞인 잔을 또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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