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1960년 4월 16일

샌. 2007. 4. 17. 12:35

'가요무대'에 가슴이 젖어드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었는가 보다. 젊었을 때는 사랑 타령이나 눈물만 징징대는 노래라며 고리타분해 했는데 이젠 옛날 노랫가락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특히 소주 몇 잔이라도 걸친 날에는 그 속 분위기에 푹 젖어버린다.

어제 가요무대의 주제는 '1960년 4월 16일'이었다. 47년 전의 이 날은 사회자의 설명에 따르면 부활절이었다고 한다. 창경원은 벚꽃 구경을 나온 인파로 넘쳤고, 경복궁도 일주일간 무료 개방했다고 전한다. 당시 서울 인구가 150만 정도, 시국은 3.15 부정선거와 곧 이은 4.19로 어수선했음에 분명하다. 당시에 유행했던 유행가를 소개하며 중간중간에 섞이는 옛 이야기가 향수를 자극했다.

1960년이라면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었을 때였다. 산발적으로 남아 있는 기억의 파편들 중에 당시의 학생 데모에 대하여 부모님이 식사 중에 시국에 대하여 걱정스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던 기억이 난다. 당시 아버님은 면사무소에 다니고 계셨기 때문에 서울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접하는 것이다른 사람들보다 빨랐을 것이다. 어린 나에게 그런 얘기가 관심이 있었을 리는 없었을 텐데 약간은 무거웠던 그때 안방의 분위기만은 왠일인지 지금껏 남아있다.

유행가를 들어보니 5, 60년대는 확실히 낭만의 시대였다. 노래 가사가 얼마나 멋들어진지, 비록 국민소득이 수백 달러에 불과했지만 마음의 여유와 희망과 꿈이 있던 시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금 아이들도 나중에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그런 낭만과 향수를 느끼게 될까? 그것이 우리 세대만의 특권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런데 왠지 아닐 것만 같다. 그러나 세상은 자꾸만 이해타산적이고 차갑게 변해가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과거가 아름답게 회상되는 것은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잘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혼자 흥에 취한다. 인생무상.... 47년 전의 촌뜨기 소년이 이젠 머리가 허옇게 되어 그때와 같은 노래에 가슴을 내놓고 있다. 또 그만한 세월이 흐른다면 이 지상에서 내 흔적은 찾을 수 없을 것이고 새로운 사람들이 뒤를 이어 비슷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를 기억해주는 사람 하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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