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악어의 눈물

샌. 2007. 4. 3. 10:17

‘악어의 눈물’이란 말이 있다. 악어가 먹이를 삼킬 때 입을 크게 벌리는데 이때 눈물샘이 자극되어 눈물이 나오게 된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악어가 자신이 잡아먹는 먹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여겨서 거짓과 위선을 상징하는 눈물이 되었다. 얼마 전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한 정치인의 눈물을 두고도 언론에서 이런 표현이 쓰였다.


인간의 자선행위도 근원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런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악어의 눈물에 해당되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 어려운 사람이 소개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들의 처지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동정한다. 그리고 ARS 전화를 눌러 천원을 기부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위로한다. 그러나 똑 같은 사람이 복지제도를 위해 세금을 더 내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흥분하며 반대한다. 이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개선시키려고 하지 않고 체제의 희생양에 대해서만 동정의 싸구려 눈물을 보이는 것은 악어의 눈물과 다르지 않다. 문제의 본질적인 면을 제대로 파악하고도 그런 행위를 보이는 것은 위선이고 이중적인 행태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인간 행동을 살펴보면 자신의 이익에는 철두철미하지만 공공의 이익이나 공동선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공공의 이익에 찬성하는 경우는 그것이 자신의 이익과 배치되지 않을 때뿐이다. 주택이나 세금문제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예외 없이 그런 경향을 나타낸다. 공동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보편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선을 지향하는 사람으로 긍정 평가하며 착각하고 있다. 물론 인간의 동정심이나 이타심을 완전히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동정심, 약자에 대한 배려, 타인에 대한 희생은 고귀한 인간정신의 한 측면이다. 만약 이런 것이 없다면 인간세계는 짐승들의 약육강식 무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 속에는 인간의 이기성이 숨어있음을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단지 자기 위안의 얄팍한 동정심에 불과한 것이다. 소로우가 가장 경멸한 것도 그런 것이었다. 그런 거룩한 체, 엄숙한 체하는 종교인들의 자세, 특히 그들의 자선행위를 매몰차게 경멸했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는 시선을 외면하면서 거지에게 한 푼 던져주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한 듯한 태도를 비난한 것이다.


역사가 오랜 기간 진행되어 왔지만 공동선에 관한 한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그 원인은 각자의 또는 각 집단의 이익이 상호 충돌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입장에서는 결코 양보가 없다. 누구나 부동산 투기를 욕하지만 정작 수천만 원의 프리미엄이 약속되는 청약 현장에는 수 km씩 줄이 생기고 사나흘 정도 밤을 새우는 것은 예사다. 에너지 자원과 지구온난화를 걱정하지만 자동차 사용을 줄이는 등 자신의 편의를 희생할 결심은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보건대 인간에 내재된 이기성의 위력은 엄청나다. 인간은 유전자의 지배 아래 있고 수십억 년 간 그런 방식으로 진화해온 유전자의 성질 또한 변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런 점에서 ‘악어의 눈물’은 악어에 관한 말이 아니라 인간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교묘한 포장술이 발전해 그런 사실에 대해 알게 모르게 속고 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그런 ‘악어의 눈물’은 이제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처세술이 되었다. 자신의 본마음을 적절히 위장하고 포장해서 적당히 울어주고 적당히 웃어주는 기술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능력 있는 자들의 기본 자질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대부분 꼭두각시들이다. 자신은 잊어버리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되어 조종을 받는다. 자신은 가장 화려한 춤을 추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그러나 슬프게도 거기에 그 자신은 없다. 비록 춤은 서툴고 말은 더듬거리지만 못 생긴 얼굴 그대로의 주체적 인간을 만나고 싶다.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더욱 그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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