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샌. 2007. 3. 27. 16:05

수녀님, 그간 소식이 뜸했네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옛말이 있지만 프란체스카 편으로 듣는 소식은 그렇지도 않은 듯해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함을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코가 석자라고도 하잖아요. 자신도 헤매는 주제에 다른 이에게까지 신경 쓰기에는 제 마음의 여력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보내달라는 부탁은 진즉에 들었는데 앞의 논리로 변명을 삼겠습니다. 어제는 마음먹고 서점에 나가서 책 한 권을 골랐습니다. 정말 요사이는 뭐에 그리 쫓기는지 서점 출입한 지도 오래되었답니다. 책 볼 마음의 여유도 없구요. 언젠가 수녀님과 목아박물관에 갔을 때가 떠오르네요. 그때 뜰에 있는 돌에 새겨져있던 ‘보왕삼매론’을 같이 읽던 기억이 나시는지요.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병고로서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제 잘난 체하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근심과 곤란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하셨느니라.

공부하는데 마음의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수행하는데 마(魔)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 데에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진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 무리를 이루라” 하셨느니라.’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고해(苦海), 또는 사바세계라고 부른다지요. 사바란 원래 인토(忍土)라고 하네요. 참고 견뎌야 할 세상이라는 뜻이죠. 곤란과 고통의 의미가 ‘보왕삼매론’에서는 새롭게 해석됩니다. 그것은 고해로서의 이 세상이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여지고 의미 부여되어야 할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픔과 고통은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데 필수적 요소가 되고, 이 세상은 성장의 배움터로서 참고 견딜 만한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거죠. 물론 그 과정은 힘들고 맛은 쓰겠지만 말입니다. 장애와 고통을 스스로 찾아서 맞이하라는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도 배치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설교조로 길게 쓴 것은 건방지게 수녀님에게 드리는 말이 아니라 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뜻(?)을 펼쳐보고 싶었는데 그게 좌절된 후유증이 예상외로 크거든요. 그러나 고통과 아픔을 회피하려는 대신에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마음이 지금의 저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간의 좁은 안목으로는 일어나는 상황들에 대한 판단은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요.


수녀님, 이 책을 고른 이유를 아시겠지요? 행복이라는 말조차 상품화되어가는 현실이지만 법정 스님의 글은 그분의 삶에서 우러나는 진정성이 배어있어 믿음이 갑니다. 살아있는 존재들은 다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 행복은 스스로가 찾아가야 할 구도의 길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녀님이나 저나 밖의 조건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에서의 빛으로 인하여 환히 밝혀진다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어느덧 봄이 가까이 와 있네요. 창 밖에는 이른 꽃나무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교정이 넓고 나무들이 많이 있어 멀리 나가지 않고도 눈요기를 즐길 수 있답니다. 산수유, 목련, 미선나무, 개나리, 진달래....., 명자나무도 바알간 봉오리들로 가득합니다. 풀꽃 중에서는 냉이꽃이 제일 먼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들이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긴 인고와 어둠의 시간이 필요했음을 기억합니다.


수녀님, 오랜만에 쓰는 편지가 무거워졌네요. 오늘은 또 한 통의 슬픈 전화를 받고 마음이 무척 우울합니다. 그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가 속히 치유되길 기도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저에게 무슨 일이 찾아올지 모르나 어떤 손님이더라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수녀님도 그리스도 안에서 따뜻한 평화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언제 한 번 뵈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세상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2007.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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