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너무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샌. 2007. 3. 16. 14:47

TV를 볼 때 가끔 얼굴이 찡그려지는 경우가 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동원된 방청객의 지나친 반응, 출연자들의 과도한 몸짓들,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의 남용 등이 그렇다. 특히 저녁 시간대에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에서 시식하는 사람의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이라든가, 재미를 위해 그러는지 몰라도 시골 노인들의 경박하고 과장된 모습만 강조해 내보내는 장면은 보기에 민망하기까지 하다. 나이 든 노인들이 TV를 통해 희화화되고 있는데 모든 것을 오락 프로그램 정도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이 TV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TV에서 들을 수 있는 말 중 귀에 거슬리는 대표적인 것이 ‘너무’와 ‘같아요’이다. ‘너무’와 ‘같아요’가 어법에 맞게 사용되지 않을 때 뭔가 어색하고 거북하다. ‘너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로 되어 있다. ‘너무’는 부정적 의미를 나타낼 때 쓰는 게 맞다. 예를 들면 ‘너무 아프다’ ‘너무 어렵다’ ‘너무 힘들다’ 등으로 쓰여야 한다. ‘너무 좋다’ ‘너무 멋있다’ ‘너무 사랑해’는 잘못된 경우고 그런 말을 들을 때도 뭔가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라는 말이 긍정이고 부정이고 가리지 않고 사용된다. 이것은 방송의 영향이 크다. 특히 과도한 표현을 해야 하는 경우에 TV에 나온 사람들의 입에서 ‘너무’라는 말을 너무나 자주 듣게 된다. 특히 개그맨들이 심한데 어린 아이들이 그런 말투를 흉내 내서 따라 하고 이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무심코 쓰고 있다. 오늘 동료들과 밖에서 점심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도 누군가가 창 밖을 내다보며 “경치가 너무 좋다”라고 해서 실소를 했다.


‘같아요’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심리가 그 말에는 들어있다. 서로 대화하는 중에 ‘같아요’라는 표현을 듣게 되면 왠지 상대방에 대해 신뢰가 가지 않는다. ‘같아요’는 추측이나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사용할 수 있으나,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는데도 ‘같아요’를 남용한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 “배가 고픈 것 같아요”라는 말도 나온다. 배가 고프면 고픈 거지 ‘고픈 것 같아요’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영 듣기가 거북하다. 이런 잘못된 표현에 대해서는 바로 잡고 다시 녹화를 하든지 해야지 그냥 내보내는 방송사의 무신경도 안타깝기만 하다. 심한 경우 “너무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너무’와 ‘같아요’가 남발되는 것은 분명히 우리 시대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과장의 사회가 ‘너무’를 만들었다면,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대가 ‘같아요’라는 말의 사용을 빈번하게 만들었지 않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어느 순간에 하층으로 몰락하게 되는 것은 이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 얘기가 아니라 이젠 모든 봉급쟁이들에게로 확대되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서 사람들은 더욱 피 말리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것은 무한경쟁의 사회를 만들었다. ‘너무’와 ‘같아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 시대의 피곤한 우리들 자화상이 떠올라 자꾸만 씁쓰레해진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0) 2007.03.27
[펌] 교사도 우울하다  (0) 2007.03.22
옛 동무들과의 재회  (0) 2007.03.11
잃어버린 겨울  (0) 2007.03.05
부전나비의 교훈  (0) 2007.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