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옛 동무들과의 재회

샌. 2007. 3. 11. 07:43

초등학교 동창 모임은 늘 오순도순하며 즐겁다. 우리는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데 나는 5년여 모임에 나가지 않다가 이번에 다시 옛 동무들과 만나게 되었다. 학연 중에서도 아마 초등학교 동무들이 누구에게나 제일 허물없는 사이일 것이다. 지금의 사회적 지위나 가짐에 관계없이 당시의 천진난만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초등학교 동창들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를 6년 내내 거의 같은 반에서 다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임에서는 주로 옛 이야기가 화제가 된다.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예전 일들을 잘 기억하고 있는 동무가 있다. 담임 선생님의 성함이나 특징부터, 심지어는 우리들에게 읽어준 동화책의 제목까지도 기억하고는 우리를 그시절로 돌아가게 해준다. 내 머리 속에는 과거가 하얗게 바래버렸지만 그의 말을 들으면 단편적으로나마 기억이 살아나면서잃어버린 과거를 되찾은 듯 즐거워진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박자를 맞추며 즐거울 수 있는 것은 공통된 유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때문일 것이다. 기억의 공유야말로 우리를 연결해 주는 끈이다.

그런 기억의 공유가 넓고 깊을수록 다정한 동무 관계가 된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내밀한 기억의 공유가 많을 수록 동무와의 유대는 더욱 강해진다. 그런 점에서 초등학교 동무들은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초등학교 동무를 통해서 우리는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에 젖을 수 있고, 그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그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억의 창고에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저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껏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는 아픈 기억도 있지만 이제는 그저 허허 웃으며 말할 수 있다.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이 어느 동무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는 것에 대해 놀라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아직 서로 알지 못하는 그런 흔적들이 우리들 마음 속에는 많을 것이다.

옛 동무들이 그리워지고 만나고 싶어지니 나도 이젠 나이가 들었나 보다. 한때는 독불장군 식으로 홀로의 세상을 살아가리라 다짐했지만 역시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는 걸 배운다.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자신이 바른 주체로 당당히 서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 또한 이웃과의 관계망을 떠나서는얻어질 수 없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만남과 소통의 관계를 이젠 일부나마 복원시키고 싶다.

그래서 유년의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옛 동무들과의 만남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들과의 만남은 이미 지나가 버렸지만 우리들 마음 속에 각인되어 화석화된 과거에 생명을 주고 그리움으로 되살아나게 한다. 그런 상호간의 정서적 공감대야말로 자꾸 나이 들어가는 상실의 시기에 우리를 위안해 주는 것 중의 하나이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 교사도 우울하다  (0) 2007.03.22
너무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0) 2007.03.16
잃어버린 겨울  (0) 2007.03.05
부전나비의 교훈  (0) 2007.03.03
Pangea Ultima  (0) 2007.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