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창문을 열고 사는 기쁨

샌. 2007. 5. 6. 19:08

도시에서는 내 창문도 마음대로 열고 살 수 없다. 내가 이때껏 산 지역이 고약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소음과 매연 때문에 창문을 열면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선지 최근의 도심에 있는 고급 아파트들은 완전 밀폐형이라고 한다. 아예 통유리로 창문에는 손을 댈 수 없고 중앙에서 공기 정화와 순환을 시키는 방식이다. 도시의 소음 공해와 더러운 먼지를 인공적으로 완전히 차단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도시에서는 자연과 멀어지고 인공의 손을 빌릴 수록비싸고 좋은 집이 된다.

그런 집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건강에 좋을 것 같지도 않고 독가스로 덮인 속에서 홀로 좋은 공기 마시며 사는 기분이 별로 편안할 것 같지도 않다. 창문을 열면 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이 꽃향기를 날라다주는 그런 집이 사람 사는 집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사는 환경을 개선하기 보다는 나만 깨끗한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며 살겠다는 심보도 역시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좋은 공기를 제공하기 위해서 나온 오염 물질은 다른 지역을 더럽힐 수밖에 없다.

이곳에 와서 행복한 것은 창문을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것이다.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고 산 밑이라 도시 지역이지만 소음이 전혀 없다. 이때껏 낮이나 밤이나 자동차 소음에 시달린 탓에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믿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공기도 무척 깨끗하고 상쾌하다.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 놓아도 바닥에 거의 먼지 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남쪽과 북쪽, 양 방향의 창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한 바람이 집안을 한 바퀴 휘돌아 나간다. 시골 생활에서나 느낄 법한 탁 트인 기분을 이곳에서는 만끽하고 있다.

또 여기는 아파트의 최고층이라 전망이 망망대해로 열려 있다. 늘 아파트 벽에 갇혀 답답하게 살았는데 여기서는 마치 수많은 장졸들을 지휘하는 장군의 기분마저 느낀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곳을 선택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살 수록 더욱 짙어진다. 이 집이 교통도 불편하고 고층이고 해서 들어올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내가 선뜻 결정하니 집은 임자가 있는 모양이라고 소개해준 사람은 말했다. 그만큼 도시의 사람들은 편리함을 최우선 순위에 놓는 것 같다.아이들도 처음에는 전철에서 거리가 멀다고 투덜댔지만 지금은 대체로 만족한다.

서울 주택의 창문은 제대로 열지도 못하는 반쪽의 기능밖에 하지 못한다. 열고 싶어도 소음과 매연, 먼지 때문에 나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음껏 창문을 열어놓고 산다. 거침없이 들어오는 바람이 서울 공기 같지 않게 맑고 상큼하고, 도시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올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 지내려고 한다. 창문을 열 수 있는 자유를 되찾은 요즈음은 그래서 무척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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