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펌] 내 하느님이 계시는 곳

샌. 2007. 4. 22. 16:38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만나러 교회나 성당에 간다. 성당에 가면 제대 위에 커다란 십자고상이 있고 벽에는 다양한 성화나 14처를 걸어 둔다. 그리고 안벽 감실에는 성체가 모셔져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평일에도 성당에 가면 저절로 머리가 조아려진다. 미사가 거행되면 그 분위기가 더욱 고조된다. 참례자 모두 지난 주간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은총 속에 새롭게 거듭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매일의 삶을 지배하는 ‘아집과 탐욕’에 사로잡혀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낸다. 교회는 이를 일러 ‘악’이라고 부른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일주일 가운데 6일을 악의 지배 아래 있다가 겨우 하루 성당에 나가 자신의 게으름과 나약함을 탓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일년 내내 반복된다. 왜일까? 성당에 계신 예수님의 ‘영빨(?)’이 신통치 않아서일까? 아닐 것이다. 위대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이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렇게 신통찮은 하느님을 섬겨 왔을 리가 없다.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어서다. 하느님이 교회에 계시는 것과 똑같은 비중으로 우리의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체에만 하느님이 계신 것이 아니다. 동네 마당에서 입에 침을 튀기며 악담을 퍼붓는 아주머니의 가슴 속에도 계시고 나를 속여 어떡하든 물건을 팔아먹으려는 외판원의 머릿속에도 계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부엌에서 쓰는 날 무딘 식칼이나 먹다 남은 빵 쪼가리도 하느님의 작품이다. 화장실에서 일 한 번 보고 열겹 스무겹으로 풀어내는 화장지나 냉장고에 먹지 않고 썩어 가는 음식을 통해서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 우리는 자신의 입맛과 취미에 맞지 않거나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신경질적으로 내치거나 무시해 버린다. 나와 똑같은 사물이나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하느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모두가 다르게 만들어 놓았는데, 나와 다르다고 짜증을 내면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느님의 의도를 무시하고 내멋대로 사는 게 아닌가!


크고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세속의 가치관에 빠져 있는 한 우리가 하찮다고 여기는 것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은 결코 볼 수 없다. 또한 나만의 하느님을 추구하는 한 내가 싫어하는 것에 숨어 계신 하느님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랴! 이 세상에는 크고 좋은 것보다 우리가 하찮다고 여기는 것이 훨씬 더 많고, 내게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을.

 

- 서울주보의 '말씀의 이삭' / 황대권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연(歸然)  (0) 2007.05.04
이 시대에서 가난의 가치  (0) 2007.04.27
내 탓이오  (0) 2007.04.18
부활의 삶  (1) 2007.04.11
부탄의 행복 실험  (0) 2007.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