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내 탓이오

샌. 2007. 4. 18. 12:39

나는 겉보기와는 달리 치밀하지 못하다. 일을 대충대충 해버리는 것이 단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무척 꼼꼼하고 자상한 성격일것이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번에 터를 정리하면서 그런 나의 성격 때문에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고 있다. 자신이 사서 형질 변경 시키고 수 년간 살았던 땅이 몇 필지인지도 모르고,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서류상의 오류를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터를 넘겨주면서 자기 땅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으니 할 말이 없다. 덕분에 처리기간도 늘어나고서류 준비나일의 양도 몇 배로 늘어났다. 경비가 많이 들어간 것도 물론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괜한 수고를 끼치는 폐를 입혔다. 삽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을 중장비가 동원되어야했던 것이다. 이것이 다 일을 얼렁뚱땅 처리하는 내 습관 때문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내 탓이오다.

사람이 자신의 관심분야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나의 경우엔 정도가 심하다. 나 개인적인 것과 관계있는 일에는 몰두하지만 그렇지 않은 집안 일이나 다른 세상살이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그러니 가장으로서도 낙제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아내의 가장 큰 불만이기도 하다. 심지어 아내는 자신의 한 몸에 연관되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이기주의자라고 나를 부른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아내 말 그대로니 변명을 할 자격도 없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신념을 따라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며 함께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몫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세상은 그런 인간 세계들의 교집합의 공통영역에 의해 연대되고 움직여져 나간다. 인간은 '홀로'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함께'의 존재이다. 이번 일도 사실은 그 '함께'를 무시함으로써 초래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동안은 '홀로'의 의미를 묻는 것에 몰두했지만, 이제부터는'함께' 어울려 사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깨달아 나가는 것이나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의 접촉도 늘리려 하고 친구들과의 교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려 한다. 속물적이라고 비난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들에도 따스한 시선을 주려고 한다. 터에서의 수 년간의 경험은 나를 다시 원자리로 돌아오게 한 셈이다. 그것은 동시에 '절대'의 위험성에 대해 몸으로써 체험한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 아닌 것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넓히고, 일을 미루지 않고 처리하는 것 - 이번 일을 겪으며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가 더욱 분명히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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