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부활의 삶

샌. 2007. 4. 11. 13:06

이번 부활절은 새로 옮긴 성당에서 맞이했습니다. 워낙 경황없이 맞은 부활절이라 낯선 분위기와 더해져 마음이 어수선한 가운데 미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선지 나에게 있어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부활의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부활이 단순한 육신의 되살아남이 아니라 보다 깊은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보 신자가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단지 우리가 죽은 뒤 언젠가는 예수님을 따라 부활해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으로 믿는 그 이상의 차원이라는 것은 알 것 같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현세에서 예수 잘 믿어 복 받고 잘 산 다음에 죽어서도 영생을 약속 받으려는 마음에 그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자기희생 없는 기복에 치우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단에서 행해지는 설교의 주된 내용이 예수 잘 믿고 축복 받아 잘 살자는 것이라고 한다면 제 오해일까요? 잘 산다는 것에 토를 다는 이유는 그것이 물질지향적인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예수님의 원 가르침이 그러하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의 신자들은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보다 더 능력이 뛰어난지 그 둘을 교묘하게 잘 결합시켜 숭배할 줄 압니다. 어떤 점에서는 부활마저도 영생에 대한 인간 욕심의 투영으로밖에 저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부활은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순시기를 보내는 과정이 바로 죽음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순적 삶이란 극기, 자기희생, 비움의 삶입니다. 욕망과 아집과 이기심으로부터의 죽음입니다. 부활의 기쁨도 중요하지만 죽음이 생략된 부활의 관념은 공허할 뿐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다시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신자들에게는 자기 죽음의 통과의례가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신을 찬양하고, 눈물을 흘리고, 열정적인 의식에 참여하지만 대부분이 감정의 고양 상태에 머물 뿐 자기 부정이 실제의 삶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것은 신자들보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부흥, 찬양, 종교적 열정은 강조되지만 버림, 희생, 가난의 측면은 무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교대가 신에 가까우면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듯 아마 그렇게 했다가는 신자들이 다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진리는 선포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내세지향이 아니라 현실중심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물음에 대한 답을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을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파악한 기독교의 핵심은 자기 죽음을 통한 새로운 삶으로의 거듭남입니다. 죽고 나서 천국에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이 참된 부활의 삶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나 한 알의 씨앗이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비유는 생명은 죽음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부와 권력과 세상적 가치관에 대해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는다는 것은 힘과 강함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것이고, 성공 위주의 삶에서 유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하느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습니다. 세속적인 명예와 축복을 다 누리면서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종교 의식에 참여하고 봉사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대해 죽고 나서야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란 자신을 죽임으로써 이 세상에 빛이 되고 희망을 주는 존재입니다. 부활은 자기 부정, 자기 죽음의 쓰디쓴 길을 거쳐서야 도달하게 됩니다. 그 길을 걸으려 하지 않고 부활의 열매만 탐하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참된 부활이란 천국에 가 영원히 살기를 포기하고 지금 여기서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삶이 부활의 삶입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신앙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그러자면 우리 일상의 모든 행위가 얼마나 조심스러워져야 하는지를 압니다. 세상을 살기 위해 당연시했던 것들이 성찰의 도마 위에 올려져 다시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재테크라는 미명하에 우리는 남의 몫을 빼앗지는 않았는지요? 무심코 던지는 말 한 마디나 행위로 이웃의 가슴을 멍들게 하지는 않았는지요? 편리함과 안락한 생활을 쫓느라 반생명적인 흐름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회개란 이렇게 찬찬히 내 자신에서부터 반성적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변하면 다음은 행동이 변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말하고 믿는 대로 행동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기독교인과 똑같은 세속적 가치관 속에서 예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저에게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사이비나 위선자가 아닌 다음에는요.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실제로 부활했느냐 안했느냐, 우리가 죽고 난 뒤에 육신의 부활을 통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사실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영역이고 신비의 차원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활은 과거에 일어났던, 또는 미래에 일어날 대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삶에서 매일 매일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경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믿고 따르는 것이 제 삶을 통해 나타나는 그런 신앙을 갖고 싶습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신앙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 내 하느님이 계시는 곳  (0) 2007.04.22
내 탓이오  (0) 2007.04.18
부탄의 행복 실험  (0) 2007.03.28
삶의 전환기에서  (0) 2007.03.25
그런데 왜 행복하지 않지?  (0) 2007.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