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산(436m)은 강화도에 있는 산이다. 고구려와 관계된 전설이 있어 최근에 부는 고구려 열풍을 따라 주목을 받고 있다. 고구려 장수왕 때에 천축국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다섯 색이 연꽃이 피어 있는 오련지를 발견하고 다섯 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적, 백, 청, 황, 흑련사로 이름 붙인 절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적련사(적석사), 청련사, 백련사가 산의 서, 남,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산은 적당한 높이에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산이다. 아직 걸어보지는 못했지만 동서로 이어진 능선길이 참 좋을 것 같다.
고려산은 뭐니뭐니해도 봄의 진달래로 유명하다. 고려산의 진달래가 부르는 소리에 노심초사하다가 드디어 어제 오후에 시간을 내어 찾아갔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몰리는 사람들로 인하여 감히 가 볼 엄두를 못내었다. 아무리 구경이 좋지만 수선스럽게 꽃구경을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일을 택했지만 예상 외로 사람들이 많이 왔고, 백련사 올라가는 길은 입구에서부터 주차해 놓은 차들로 가득했다.
백련사 뒤의 고개를 넘으니 드디어 고려산의 진달래 장관이 펼쳐졌다. 사진으로 많이 보아왔던 풍경이지만 산줄기 전체가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는 광경은 과연 장관이었다. 약간 흐리고 바람 부는 좋지 않은 날씨였지만 간간이 햇살 아래 드러나는 진달래의 화사한 빛깔은 무척 곱고 아름다웠다. 이제 갓 올라온 사람들의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곳을 자주 찾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지금이 개화의 절정기라고 했다. 마침 가장 좋은 때에 산을 찾은 것이다.
어릴 때 우리는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불렀다. 마을 뒤 야트막한 뒷산에는 봄이 되면참꽃이 발갛게 피기 시작했고, 들로 산으로 천방지축 뛰어놀던 우리는 고픈 배를 이 참꽃을 따먹으면서 달랬다. 반면에 철쭉을 진달래라 불렀고, 진한 색깔과 먹지 못한다는 이유로 우리와는 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을 받은 대신 참꽃은 수난도 함께 받은 셈이다. 어디에 쓰려는지 누나들은 대광주리를 들고와 참꽃을 곱게 따가기도 했다.
산 속에서 드문드문 피어 있는 진달래를 보다가 이렇게 대군락을 보니까 영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을 이루는, 단지 숫자상의 더하기만이 아닌 한 차원 더 높은 효과를 내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감탄하는 것도 이런 비일상적인 풍경에서 받는 의외성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색다른 풍경은 색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상에 올라가 진달래 꽃밭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백련사로 내려왔다. 하늘은 점점 구름이 짙어지고 바람도 세어졌다. 길에 줄을 잇고 주차해 있던 차들도 대부분 떠났다. 위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던 동료에게 누군가가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중요한 건 마음에 담아두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