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망국의 징조

샌. 2006. 11. 21. 14:54

간디의 묘소에는 그가 '일곱 가지 사회악'(Seven Social Sins)이라고 이름 붙인 다음과 같은 글이 돌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나라가 망할 때 나타나는 징조로도 말할 수 있는 내용이다.

1. 원칙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s)

1. 노동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

1. 양심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

1. 인격 없는 교육(Knowledge without character)

1. 도덕 없는 경제(Commerce without morality)

1. 인간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

1. 희생 없는 신앙(Worship without sacrifice)

이것은 간디가1925년 'Young India'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이라는데 80여 년 전 인도의 상황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 지구촌의 문제이기도 하며, 이상사회를 향한 인류의 숙제이기도 하다.

낮에 점심을 먹고 나오며 동료와 요사이 나라 돌아가는 꼴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나누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지방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폭등이 나라의 기본을 흔들고 있다. 이 지역에서 집 없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상실감과 허탈감은 공황 상태라고 할 정도다. 이제는 그나마 살아 버티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체념하는 도리밖에 없다. 있는 사람 또한 그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간디가 말한 일곱 가지 사회악이 현재 이 나라에서 맹위를 떨치며 사람들의 심성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정치 지도자의 책임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을 만들고 기대했던 많은 국민들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도대체 어디서 문제를 풀어야 할지 난마같이 얽혀있어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정치는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어 버렸고, 돈은 투기 바람을 일으키며 미친듯 돌아다니고, 그러니 사람들도 일순간의 쾌락에 영혼을 맡기고, 교육은 붕괴 직전이고, 과학도 자본과 권력의 시녀가 되었고, 신앙도 이미 본래의 의미를 잃고 부와 성공만이 현대인의 신이 되어 버렸다.

이런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간디의 경구가 개선되기는 커녕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인간이 살 만한 세상을 불가사리처럼 먹어가고 있다. 경제 성장이 되고 GNP가 높아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연은 파괴되고 삶의 질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경쟁 대열에 내몰려 사막 같은 세상이 되어간다. 젊은이들도 배금사상에 오염되어 일신의 쾌락만 추구한다. 결혼도 경제적 거래로 되고,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수단이 되고 있다. 이젠 돈으로 인간의 계급이 결정된다. 그러니 점점 돈벌이에 집착하고, 그것이 경쟁을 낳고, 그래서 점점 삭막한 세상이 되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따스한 인간 공동체에 있어야 할 양보, 관용, 협동, 공생의 미덕은 이제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인간 역사상 어느 시대에나 이런 문제는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모든 시대가 춘추시대고 전국시대였다. 그러나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는 지금의 상황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과거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 같이 물질만능과 이기주의가 팽배한사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로 자연과 인간 파괴가 전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소위 후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도 이런 흐름에 휩쓸려 들어오고 있다. 저항할 힘조차 없을 것이다. 국가나 개인이나 자본제국주의의 포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과연 진보하고 있느냐에 대한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런 난세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 자문하게 된다. 나로서는 결론은 자명하다. 세상의 아웃사이더가 되더라도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없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인간다운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이 세상을 뜰 때, 나는 내 자신에게 떳떳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그의 일생을 잘 살았나 못 살았냐 하는 것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드러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사태를 단순히 바라보아야 한다고 느낀다. 버릴 것은 버리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그래서 삶의 쓸데없는 껍데기에 집착해서 귀중한 오늘을 허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 자신의 마음의 평화 안에서 더 나은 세상을 소망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스피노자의 말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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