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10000권의 책

샌. 2006. 11. 15. 12:54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글씨가 되고 그림이 된다.”


이것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말이다. 칠십 평생에 벼루 열개의 바닥에 구멍을 내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는 열정의 추사였으니 만권의 책을 언급할 만도 하다고 생각된다. 만권의 책이라면 얼마큼 될까? 그 당시의 책은 지금과 다르니 지금 기준으로는 아마 수천 권에 해당되는 분량일 것이다. 그래도 엄청나기는 마찬가지지만 양에는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한 인간의 독서 기간을 50년으로 잡을 때 일년에 백 권 가까이만 읽어도 그만한 독서량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금년에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이 현재까지 60권 가까이 된다. 요사이는 개인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어 컴퓨터만 켜면 대출목록을 확인할 수 있어 쉽게 알 수 있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사 본 책과 정기 구독하는 잡지까지 합하면 올해의 내 독서량도 백 권 정도에 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추사의 만 권이라는 말에는 그리 놀라지 않는다.


내가 추사의 말에서 주목하는 것은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슴이라는 것은 책의 내용을 머리에서만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감성으로 동화되며 몸으로 체화되는 단계까지 올라간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그것이 가슴 속에 들어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머리로 만 권의 책을 읽고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래서 자신의 몸과 생활로 이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을 살다보니 중요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따뜻하다. 사회는 머리 우선의 삶을 원하지만,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가슴이 넓고 따뜻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많아질 때 세상 또한 사람 살만한 장소가 된다. 추사가 말한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말의 뜻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책을 읽고 따스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즉 책을 읽는 목적이란 바른 사람 되기에 다름 아니다.


그런 뜻에서 많은 책을 읽기는 하지만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가슴으로 읽기 보다는 머리로 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읽기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단순한 지식 습득에 그친다면 극단적인 경우 뱀의 독이 될 수도 있다. 아는 것이 도리어 병통이 되는 것이다.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추사의 말을 다시 한 번 새겨본다. 그 말은 만 권의 책이 상징하는 넓고 깊은 세계관과 바른 가치관을 가진 가슴 따스한 인간이 되라는 추사의 당부로 나는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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