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얼굴은 정직하다

샌. 2006. 10. 30. 13:15

사람의 얼굴은 정직하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가 들어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얼굴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을 닮는다. 그래서 나이 마흔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은 옳다. 자신의 얼굴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살벌한 기운이 느껴지는 얼굴도 있고, 평화의 따스한 기운이 피어나는 얼굴도 있다. 한 순간의 표정은 숨기고 관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얼굴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감출 수는 없다. 내면의 공력을 화장이나 얼굴 꾸미기로 위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말은 얼마든지 아름답게 꾸밀 수 있지만 얼굴은 어찌하지 못한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해 보면 무척 재미있다. 사람의 얼굴에서 그 사람의 인생을 유추하다 보면 긴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도시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의 얼굴은 삶에 찌들고 고단한 모습이다. 생존경쟁에 버둥대야 하는 현실이 얼굴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런 일상이 누적되어 공허하고화난 듯한 도시인의 얼굴이 만들어진다. 특히 돈독에 찌든 듯한 탐욕으로 가득해 보이는 사람의 얼굴은 나를 무척 우울하게 한다. 어쩌다가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면 내 마음도 절로 환해진다. 언젠가 환경운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모인 곳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 모인 청년들은 보통 젊은이들과 다르게 하나같이 순수하고 고운 얼굴들이었다. 분위기도 평화의 기운이 가득했다. 사람이 아름다운 생각을 하니까 얼굴도 이렇게 천진난만하고 고와지는구나 하고 감탄을 했다.


어린이의 해맑은 미소에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그 얼굴에는 아직 세상의 때가 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들이 잃어버린 그 무엇인가가 거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비슷한 느낌을 시골 할머니들의 얼굴에서도 읽을 때가 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자식들 다 떠나보내고 외롭게 살아가는 할머니의 천진한 웃음은 어린아이의 미소처럼 우리를 눈물겹게 한다. 적은 것에도 만족하고 욕심 없이 살아온 사람이 내는 향기는 아름답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만은 생기는 것이다.


어제는 결혼식에 갔다가 초등학교 동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넌 나이를 먹어도 얼굴에서 오는 느낌이 좋다.”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묻지는 못했지만 그날 나는 친구로부터 최고의 칭찬을 들은 셈이다. 자화자찬인지 모르지만 최근에는 사람들로부터 얼굴 표정이나 인상에 대해서 호감어린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예전에 비한다면 얼굴 표정이나 사람과의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 나 자신도 마음속에서 긍정적인 기운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아마 그런 것이 얼굴로 나타나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이 무척 힘든 시기인데도 이렇게 평상심을 유지하고 여유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고 “당신은 욕심이 없어서 좋겠지만 식구들은 고생한다.”고 푸념을 한다. 그러면 같이 욕심을 줄이고 마음 편하게 살자고 말해보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는 타박만 받는다. 그러나 아내의 속생각도 결코 나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내 얼굴을 사랑하고 앞으로도 역시 그러하길 희망한다. 노인이 되어서도 주름살에 삶의 연륜이 녹아있는 욕심 없는 해맑은 눈동자의 얼굴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세월의 찌꺼기는 탈색되고 단순함과 부드러움과 지혜가 읽혀지는 그런 얼굴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나의 유일한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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