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죠

샌. 2006. 10. 11. 13:04

교양강좌 세 번째 시간은 한비야 님과 만났다. 그녀의 인기를 반영하듯 강당은 간의의자까지 들여놓아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특히 젊은 여자들이 많이 찾았는데 아마 그녀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이 모든 여자들의 가슴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를 직접 만나보니 역시 당차고 똘똘한, 그리고 에너지가 넘치는 매력 있는 여성이었다. 세 가지 주제를 얘기했는데, 그 중에서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살자’라는 얘기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여행가에서 월드비전에서의 긴급구호활동으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긴급구호활동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팀을 따라 케냐의 난민캠프에 갔다고 한다. 불결한 환경으로 안질 환자가 많기 때문에 그곳에도 이동 안과병원이 있었는데, 의사는 40대 중반의 케냐인이었다. 케냐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의사인데 이런 곳에 와서 일하는 게 궁금해서 이렇게 물었다는 것이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나요?”

그러자 이 케냐인은 어금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죠.”

순간 그녀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일며 머릿속이 짜릿해졌다고 한다. 책에서도 수없이 그런 말들을 읽었겠지만 앞에 있는 한 인간에게서 직접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충격이었다고 한다. 서슴없이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 의사가 부러웠고, 나도 언젠가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이후로 그녀의 인생길이 달라졌음은 물론이다. 여행이 즐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 긴급구호 일만큼 가슴 뛰는 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약자를 돕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죠.’ - 나는 과연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는 반문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개인적인 만족이나 행복을 구하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말대로 내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힘 있는 자에게 보태며 달콤하게 살다가 자연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힘없는 자와 나누며 세상의 불공평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삶에서 나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아무나 갈 수 있는 길도 아니다. 그 길은 이제까지의 삶이 지향하는 방향을 바꾸어야 하고, 새장 밖은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라는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나와 내 식솔들만을 위한 생각이나 삶으로는 결코 가슴 뛰는 경험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보통 사람이 사는 평범한 일상이 무가치하다는 말을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일상 너머에 있는 더 높은 가치를 지향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뒤풀이 자리에서 멋진 남자 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에게 총을 들게 하고 숲을 헤매게 한 것 역시 그 일이 체의 가슴을 뛰게 했기 때문이리라. 따스한 가정의 안락이나 권력의 단맛을 거부하고 죽을 때까지 민중의 곁에 있게 한 것 역시 그 일이 가슴 뛰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리라.


‘가슴 뛰는 삶’ - 이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설렌다. 비록 대리만족일망정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얘기는 나에게 힘과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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