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

샌. 2006. 11. 2. 15:29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 탐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을 작금의 부동산 투기 열풍에서 볼 수 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집값이 몇 천씩 오르고, 은행 창구는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정부는 신도시 발표로 사람들 마음을 들썩이고, 그래서 최근 5-6년 사이에 일부 지역은 아파트 값이 열 배나 오른 곳도 생겨나고 있다. 강남의 어떤 사람들은 이제 평당 일억이 되는 세상이 온다고 떠든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도 나도 돈을 쫓아 똥파리들 마냥 아파트로 땅으로 몰려간다. 그러면 집값은 다시 오르고, 이런 악순환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집 없는 사람들의 시름 또한 깊어진다. 작은 집이나마 내 집 하나 갖고 싶다는 소박한(?) 꿈마저 빼앗기게 되는 것만큼 절망적인 것도 없다. 정책의 실패를 탓하기 전에 이제는 사람들의 탐욕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진다. 그들은 바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다정한 내 이웃들인데, 자신들이 없는 자들의 몫을 빼앗아 간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시류에 휩쓸리고 있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세상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아가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돈 있는 사람이 돈 더 버는 게 그렇게 배 아프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들 때문에 내 집 마련을 포기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이제 젊은 사람이 결혼해서 정상적으로 월급 받고 살아서는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아파트 하나 구입하기가 불가능하게 생겼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방은 예외라고 할 수도 없다.


부동산 투기가 나쁜 것은 다른 이의 주거권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평범한 소시민들과 젊은이들의 꿈을 짓밟는 행위다. 법적으로는 정당할지 몰라도 도덕적으로는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는데도 자가 소유비율이 50% 정도밖에 안되는 것은 소수에 의해 여러 채가 독점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적 능력 때문에 근본적으로 집을 소유하기 어려운 빈곤 계층도 현재 상상외로 많다. 어느 통계에는 집을 다섯 채 이상 가진 가구가 전체 가옥의 30%를 차지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집을 한 채 가진 사람도 부동산은 무조건 돈이 된다는 신화에 의해 언제라도 다주택가구가 될 수 있다. 돈이 된다면 집을 담보로 은행 융자를 받아서라도 집을 추가로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 빈부격차의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부동산에 의해 점점 심화되고 있다.


가진 자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 황금성을 향해 달리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폭주기관차 같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잘 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부동산 투기도 경제의 한 부분이라고,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원리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가난한 다수의 눈물을 외면하는 사회를 정상적인 나라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런 사회는 강자와 승자 독식의 사회일 뿐, 약자에 대한 배려나 관용, 양보 같은 미덕은 찾아볼 수 없는 살벌한 정글의 사회일 뿐이다. 지하 셋방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경쟁에서 탈락한 무능력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잘못된 이 사회의 착취구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는 이런 비인간적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침묵이 또한 기이하게 느껴진다. 언론이나 시민단체나 부동산 투기 문제에 대해 이슈화를 하고 국민적 각성 운동을 벌일 만도 한데 모두들 침묵만 지키고 있다. 도리어 일부 주류 언론에서는 오히려 투기를 부추기기까지 한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대다수 국민들이 그런 논리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대중들을 무한경쟁 시키고 젊은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 심하게 표현하면 사람들을 자본주의 체제의 노예로 길들이려는 고도의 술수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도 든다. 우리는 단지 꼭두각시일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비정상적인 흐름을 마냥 도외시할 수는 없다. 단순히 시장 원리에 맡기는 차원도 아닌 것 같다.


욕망추구형 경제 시스템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투기 광풍을 보면서 절실히 느끼고 있다. 토공, 주공, 은행들은 땅장사, 돈장사를 하면서 건설업자들과 함께 배를 불리고 있다. 공기업의 공익적 기능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덕분에 허리가 휘는 것은 서민들뿐이다. 그렇다고 집을 가진 사람도 결코 행복하지 않다. 강북에 사는 사람은 강남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집을 한 채 가진 사람은 두 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어느 계층이고 만족할 수 없다. 시스템 자체가 끝없이 욕망을 생산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라고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 물질을 떠나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늘 건교부장관은 국민이 무지해서 집값이 오른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못 말리는 장관이구나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국민들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나와도 실효를 거두가 어려운 지경이 된 것은 개인의 끝없는 욕망 추구와 돈이 최고 가치가 된 세태 때문이다. 성찰하는 인간이 되어 이 물결에서 한 발짝 물러서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얼마 전에 아파트를 세 채나 가지고 있는 부자 친구와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도 30평 아파트가 10억 씩 가는 세상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뭔가 잘못된 세상이라는 데는 그나 나나 동의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이 흐름에서 정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앞으로 더 돈이 되는 곳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착하고 가난한 이웃이 최근의 투기 광풍을 접하며 내 집 마련 때문에 슬퍼하는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최소한의 주거 공간이 보장된 제도가 된다면 지금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많은 부분이 없어질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든 사회주의 체제든 인간의 기본 권리라 할 수 있는 주거권, 교육권, 의료권은 국가가 어느 정도 책임지는 체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물질에 대한 인간의 탐욕도 어느 정도 순화되지 않을까 싶다. 경쟁을 시켜 일등을 향해 달리게 하기 보다는 함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요사이 같으면 투기와 욕망의 땅이 된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 그나마 인간적인 세상을 찾아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이상향을 찾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개판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광란의 나라, 침묵과 굴종의 나라로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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